사진출처 : http://www.animalpicturesarchive.com/view.php?tid=2&did=3510&lang=kr
한 청개구리의 특별한 여행
강길수
1.
“제발 하루라도 더 살아다오!”
“하늘아, 구름아 비를 내려다오!”
콘크리트 옹벽 옆에 서서 삼사 미터 아래 있는 갈대밭을 내려다보며 든 내 마음이다. 아니, 기도다.
“어! 이게 뭐야.”
빗자루로 화물칸을 쓸어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쓸어내린 마당 콘크리트 바닥에서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어 올랐기 때문이다.
간밤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어머님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어제 저녁 무렵 고향에서 제수씨와 아내가 소나기에 젖은 열무를 뽑아 골판지상자에 넣어두는 것을 보았다. 청개구리의 특별한 여행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밤에 고향을 출발하며 열무상자를 차 화물칸에 싣고 와 집에 내려놓고 차문을 닫았었다. 오늘 아침 출근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유리창 안에 보이는 화물칸에 열무 잎 조각 몇 개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곧장 사무실에서 빗자루를 가져다 화물칸 문을 열고 열무 잎 조각을 무심코 쓸어내렸다. 한데, 열무 잎 조각으로 보이던 것 중 하나가 청개구리였다.
청개구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도망가려하지 않는다. 등이 조금 말라 보였다. 불쌍한 마음이 든다. 잠시 갈등에 빠졌다. 길 건너 유수지(遊水池)에 놓아주면 좋겠으나, 거의 매일 먹이를 찾아오는 조류들이나 다른 포식자들의 먹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당 앞 농경지-작년에는 사료용 수수를 재배했는데, 바닥이 연중 거의 젖어있었다. 올해는 휴경이다.-에 놓아주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청개구리를 갈대가 우거진 쪽으로 던져 놓아주었다. 청개구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청개구리는 외롭고 낯설겠지만, 우거진 새 갈대밭과 어우러져 잘 살기를 바랐다.
날이 가물었다. 농경지의 풀들도 가물을 탔다. 작년에는 거의 일 년 내내 습지처럼 젖어 있었는데, 올해는 웬일로 가물까. 청개구리가 걱정되었다.
2.
아래층에 다녀온 여직원이 조금 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소장님, 밖에 작업하는 거 아세요?” 나는,
“무슨 작업? 조금 전 들어올 때 아무 작업도 안했는데?” 하면서 마당으로 내려갔다. 청개구리를 놓아 준지 두 주쯤 지난 때였다.
한 사람이 바닥으로부터 한 뼘 반쯤 올라온 콘크리트 옹벽 앞에서 시멘트 몰타르로 들어간 부분을 메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성토 차량이 통행하기 위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순간, 청개구리 생각이 떠올랐다. 이어 앞으로 이 낮은 농경지가 거대한 청개구리의 무덤이 될 것이란 마음이 들자, 저절로 이런 기도가 마음에 생겼다.
“청개구리야! 제발 차가 안다니는 밤에 저 길을 건너 유수지로 가려무나.
네가 생매장 당하기보다는 살 수 없다면 새에게 먹혀 하늘을 날아보는 게 낫지 않겠니? 지금 네 앞에 죽을 위험이 닥치고 있단다.”
청개구리는 이런 내 기도에 어떻게 응답했을까?
“고마워요. 아저씨!
가뭄 끝에 오는 소나기가 너무 좋아 전 열무 잎을 타고 목욕 마치고 잠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아저씨네 차 화물칸이었어요.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아저씨가 살려주어 낯설지만 갈대밭에서 잘 지냈어요. 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제가 바로 아저씨의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우리 동물들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보는 게 평생소원이거든요. 그래서 전 여기 그냥 살래요.”라고 했을까. 아니면,
“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 차 화물칸에 실린 열무 잎에 타고 노는데 깊은 밤이 되자, 아저씨 차는 제 고향 산골을 떠나 울긋불긋한 불들이 별빛처럼 빛나는 도회에 도착했지 뭐에요. 그 빛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없는데, 열무를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는 바람에 저는 바닥에 떨어졌지요. 그래서 전 살려고 죽은 듯이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아저씨는 직장에 출근 했고, 저를 모르고 빗자루로 쓸어내리더니, 제가 죽을 것 같아 달아나니까 잡아서 갈대밭에 던져 살리셨어요.
그래요. 전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어요. 전 오늘밤 저 유수지로 건너가겠어요.”라고 했을까.
3.
내가 아는 청개구리의 특별한 여행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 이후 청개구리의 운명을 알 수가 없다.
마치 나 자신이나 모든 존재의 운명처럼.
(2012.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