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수유리의 꿈

보니별 2011. 12. 15. 23:37

 

 

 

 

[공통소재 수필][5매 수필] 

                                    수유리의 꿈

 

                                                                                             강길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만나자!”

는 약속의 증표다.

 

  그리고는 술잔에 동동주를 가득 부어 ‘브라보!’하면서 모두가 축배를 들었다.

 

  형님들의 반 강권에 못 이겨 손가락을 걸었지만, 앞에 앉은 아가씨와 눈길이 마주쳤을 때는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다.

 

 

  그때 열아홉 총각이던 나는, 나이가 열 살 이상 많은 형님 벌 동급생들의 웃음 앞에서 그렇게 손가락을 건 것이다. 공부할 때는 동급생이지만, 공부를 마치면 나는 그들을 ‘형님’으로 불렀다. 형님들은 나를 막내 동생처럼 따뜻이 대해주고 아껴주었다. 그런데 아가씨와 진지한 말들을 주고받던 나를 보고, 형님들은 무슨 마음으로 손가락을 걸고 다시 만날 약속을 하라고 부추겼을까?

 

 

  내가 아가씨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싶다. 펜팔로 안 아가씨나, 아내와 선을 본 후 두세 번 데이트한 적은 있어도, 다시 만나자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 약속은 그때의 내게는 큰 일일 수도 있어, 며칠간은 마음을 맴돌며 소용돌이 쳤었다. 그런데, 형님들은 무슨 연유인지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내 말에, 아가씨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산골에 가 초가삼간 오두막집을 짓고, 오로지 책을 벗 삼아 한평생 사는 것이 제 꿈이에요….”

 

  덧붙여 자기가 벌어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있는데, 공부 마치면 꼭 자기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방학기간이 바람처럼 후딱 지나갔다.

 

  배움터에 도착한 나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형님들이 언제 동동주 집에 가는지 조급증을 가지고 눈치만 보았다. 며칠 후, 드디어 우리들은 다시 그 집에 갔다.

 

 

  들어서자마자, 나는 주인에게 아가씨의 소식을 물었다.

 

  “며칠 전 떠났어요!”

 

  주인의 대답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빌어주었다.

 

  부디 ‘오두막집 꿈’을 꼭 이루라고…….

 

  오두막집 꿈은, 열아홉 살 내 ‘수유리의 꿈’이기도 했다.

 

 

 

            - <보리수필> 6집,  2011. 11.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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