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강길수|姜吉壽
“용케도 화를 면했네! 게다가, 오월에 피어나다니?”하고 중얼거렸다. 꽃 앞에 앉아 유심히 바라본다. 대문 옆이라 낫으로 웃자란 풀을 베거나, 어떤 직원은 아예 뽑아 버리기도 하면서 지내던 터였다. 한데, 그 자리에 한 철이나 이른 작고 연약한 들국화 세 송이가 진주보다 예쁘게 피어있다. 놀랍다. 직원들에게 대문 옆의 잡초는 내가 직접 베겠으니, 뽑지 말라고 일렀다. 들국화를 구하기 위해서다. 내가 한 작은 공장의 책임자로 일하던 어느 오월 말경의 일이었다.
들국화에 대한 내 관심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서점에 들러 식물도감을 찾아 이름, 서식지, 특징 등을 조사하였다. 결과,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해국’, ‘야국’ 등 여러 종류와 이름이 있음을 알았다. ‘들국화’는 야생하는 국화를 총칭하는 이름임도 알았다.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들국화는 바로 ‘구절초’와 ‘쑥부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들국화’가 더 정겨워 그대로 쓰기로 하였다.
지난 주말, 아버님 제사 모시러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집 넘어가는 작은 고갯길. 길섶 군데군데 들국화가 무리 무리지어 곱게도 피어났다. 연한 보랏빛 꽃잎이 살랑살랑 손짓한다. 그 손짓은 문득, 까까머리로 이 길을 자전거 통학하던 그 옛날 중학교 시절로 나를 확 되돌아가게 하였다. 우마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던 비포장 고갯길을 자전거를 끌거나 타며, 자연을 벗 삼아 넘어 다녔다. 어느 가을날, 시민 운동회에 참석하고 혼자서 돌아오는 고갯길…. 땅거미가 완전히 내렸다. 달도 없는 터라 상당히 어둡다. 무섭고 두렵다. 그래도 가야 한다. 왼손에 성냥갑을 꺼내 들고, 고갯길을 재빨리 오른다. 자전거가 하나도 무겁지 않다. 고갯마루 부근에 다다랐을 때다. 저 쪽에서 무엇인가 희끄무레한 것이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어 그 앞으로 다가갔다. 무엇인지 확인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활짝 핀 들국화였다! 어찌나 얄밉고도 반가웠던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고갯길을 후다닥 올라, 단숨에 집에까지 내 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어찌하여 그런 용기가 났던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요즈음도 그 까까머리 때의 들국화 사건이 생각나면 빙긋이 웃는다. 만일 공장 정문 옆의 들국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까까머리 때의 들국화 추억도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터이다. 그리고 내 들국화 사랑은 싹트지 않았을 것이다.
잡초들이 자라 낫으로 벨 때면 조심조심 들국화나무는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갈수록 가지가 생겨나고, 튼튼해지며 더 큰 꽃나무로 변해갔다. 놀랍게도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여름과 가을은 물론, 무서리가 내리는 이른 겨울까지 줄기차게 꽃을 피워냈다. 다른 풀들이 이미 기력을 잃고 말라서 바삭거리며 생을 다 한 초겨울 아침, 무서리를 맞으며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국화…. 어찌 그 자태에 ‘미당’의 ‘국화’를 비길쏜가. 국화가 아무리 화려한들 사람 손에 가꾸어진 것이고, 사람에 의해 보호받는 꽃이 아닌가. 국화를 들국화에 비한다면 화려하기는 하지만, 꽃잎들은 확실히 더 무질서하다. 또한, 국화의 인고(忍苦)가 어찌 저 들국화의 오랜 인고에 비길 수 있으랴. 더구나 국화에 어찌 무서리 맞으며, 인고로 정화된 저 들국화의 청초한 지성미(知性美)가 서려있겠는가!
활짝 핀 들국화를 가만히 보노라면, 해맑은 지성의 아름다움이 안으로부터 배어나오고 있는 어느 청초한 여인의 자태를 느끼게 된다. 어쩌다가 가지런한 꽃잎이 두 개씩 겹친 것은, 여인이 웃을 때 드러나 더 예뻐 보이는 덧니를 연상케 한다.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는 꽃, 화려하진 않더라도 청초한 지성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 봄날의 따사로움과 찬란함, 여름날의 싱그러움과 성숙, 가을의 풍요로움과 고독, 그리고 겨울의 강인함과 소망을 모두 갖춘 청초한 지성의 여인과 같은 꽃, 들국화….
꽃이 지고나면, 들국화가 연출하는 또 다른 모습에 나는 도리 없이 유혹당하고 만다. 막 유년기를 벗어난 소녀처럼 앳된 모습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보송보송 보드라운 깃털을 단 들국화는, 볼을 부비고 싶을 만큼 앙증스럽게 바람을 유혹하는 것이다. 한 생을 결산하는 깃털을 펴 서로 보듬고 서서. 그리운 바람을 기다린다. 새로운 한 생을 펼칠 새 세상을 향하여 날아가려고.
서리 내린 초겨울 낮에 들국화의 작은 씨앗을 받으며 나는 희망에 부푼다. 씨앗에 설계되어 있을 들국화의 새로운 삶과 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생명의 어머니 새 대지를 만나면, 들국화는 다시 그 절제와 질서의 꽃, 해맑은 지성의 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하여, 느낄 수 있는 이들에게 절제와 질서와 지성의 미를 청초하게 선물할 것이다.
나는 그 씨앗을 받아 봉투에 넣고, 받은 날자와 장소 등을 써 가방에 넣어 두었다. 어느 훗날, 내가 좋아하는 바닷가나 자연 속에 내 작은 둥지를 틀게 되면, 그 곳에 심기 위해서다. 그렇게 들국화 씨앗을 받은 것이 벌써 몇 해가 흘렀다. 지금도 옛 출퇴근용 가방에는, 공장 대문 옆에서 받은 들국화 씨앗이 새 대지에서 움틀 날을 꿈꾸며 잠들어있다.
어느 훗날, 나의 들국화 사랑이 다시 꽃피울 그 날을 위해서….
** <에세이 21> 2010. 가을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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