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온라인 크리스마스 선물

보니별 2013. 11. 29. 22:25

 

 

                   온라인 크리스마스 선물

 

 

                                                                             강길수┃姜吉壽

 

  다음 주면 성탄이다. 미사 직전, 대림절待臨節* 촛불 네 개가 다 켜진다. 마지막 흰색 초에 불이 켜질 때, 한 소녀의 해맑은 얼굴이 촛불에 오버랩 되었다. 소녀는 지금 숙녀가 되었을까. 아마 어느 성당에서 미사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십년 전 쯤의 일이다. 메일이 왔다. 미카엘라에게서 왔지만, 웬일인지 꼭 다른 곳에서 온 것만 같다. 대림절 끝자락 이어서일까. 내용 때문인가. 온라인 인연 때문일까. 미카엘라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중년여자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지체부자유아동보호시설에 방문하여 봉사활동도 하였다. 음식점 경영에다 대학 강의만 해도 바쁠 텐데, 복지시설과 지자체 봉사까지 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녀가 사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그녀의 메일내용은 이랬다. 이번 아동복지시설 ‘천사원’ 방문은 무슨 사정으로 아침 일찍 갔다. 대문에 가까이 다다랐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문간에 한 여자아이가 실신상태로 버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안으로 안고 가 아이의 상태를 세심히 살펴보았다. 신열이 매우 심했다. 아파하거나 울 기력도 없었다. 길을 잃고 병 깊어 쓰러진 천사 같아 마음이 아렸다. 병원에 달려가 진단한 결과, 신장염으로 판명 이 났다. 더구나 당장 신장절제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신장 한 쪽이 썩어 가고 있었던 거다.

  미카엘라는 무작정 나서서 수술을 추진했다. 은사의 소개로 한 학기동안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받은 강의료는 물론, 그녀가 경영하는 가게수입의 대부분을 쓰기로 하였다. 대학 다니는 아들이 용돈에서 얼마, 어린 시절 데리고 와 가족처럼 사는 여 조카도 자기 급여에서 상당 부분을 내놓았다. 또, 아는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수술 날짜를 받았다.

  해마다 오는 대림절이지만, 나는 타성에 젖어 지내기 일쑤였다. ‘항상 깨어 있어라!’는 메시지를 하늘에서 보내오는 시기인데도,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늘 살았다. 그러나 그해 대림절은 ‘하늘의 메시지가 나에게 왔다’는 마음이 점점 짙어져갔다.

  ‘연말, 성탄을 앞 둔 시기에 미카엘라를 통해 하늘은 왜 이 메시지를 나와 우리 집에 보낸 것인가?’하고 생각해보았다. 집안 형편은 대학생이 둘인데다, 직장을 그만두고 개업한 일도 신통찮은 상황이었다. 집안 형편을 고려하면, 이 일을 아내에게 협의한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카엘라라는 메신저를 통해 하늘로부터 ‘불쌍한 어린천사를 도우라!’는 메시지가 우리 집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청년시절, 삶의 이정표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산상수훈이 떠올랐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음에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역설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이정표로 각인된 말이다. 이 말을 다시 되뇌자,

  ‘그래. 단순하게 보자. 불쌍한 천사에게 그냥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자. 뭐든지 그냥 하는 어린이들처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우리 가정 ‘한 달 수입의 삼분의 이’를 수술비로 보내자 고 제의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작은 유통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수입이 신통치 않을 때였다. 내 말을 들은 아내가 펄쩍 뛴 것은 물론이다. 나는 더 설득하려 들지 않고, 그냥 넘겼다. 마음씨 모질지 못한 아내가 어떤 비답批答을 곧 내릴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내는 내가 제시한 액수의 반을 보내자고 했다. 내 마 음에 차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라도 동의 해 준 아내가 참 고마웠다. 바로 아내의 손을 통해,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어린천사의 신장수술에 우리 집의 작은 정성을 보탤 수 있었다. 미카엘라의 고맙다는 메일과 전화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 약 일주일 후, 그녀에게서 수술이 성공되어 어린 천사가 빠르게 회복된다는 소식을 받았다. 연말에는 거의 다 회복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받았다.

  얼굴 한 번 못 본 불쌍한 어린천사를 위하여 한 달 수입의 삼분지 일을 내놓고 나니, 당장 가정경제에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나와 아내에게 되돌아오는 기쁨은 진한 여운으로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덕분에 가슴 뿌듯한 성탄절과 새해를 누렸다. 미카엘라가 천사원을 방문할 때마다, 메일을 통하여 전해오는 어린천사의 얘기는 우리를 살 맛 나게 하였다. 젊은 날부터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위문과 노력봉사 등으로 보람도 느꼈었지만, 그해 크리스마스선물처럼 기쁨을 되돌려 받은 적은 없었다. 어린천사에게서 우리가 오히려 더 큰 선물을 받은 게 분명하였다. 대지가 뭇 생명에게 자기를 그냥 주어 자라나게 하듯, 선물도 필요한 이에게 그냥 주는 것이란 메시지를 함께 싣고…….

  강산이 변할 세월이 후딱 지났다. 거리엔 성탄 장식들이 미리 반짝인다. 올 대림절 마지막 주 미사도 끝났다. 신자들은 미사에서 희망을 받아 안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옛 대림절, 하늘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우리 집에 왔던 어린천사 소녀도, 지금 미사를 마치고 씩씩하게 세상으로 나아가겠지.

 

 

  *가톨릭에서 예수 성탄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전 4주간의 기간.

 

 

                                                             (<에세이21> 201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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