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가빠옹당이

보니별 2015. 12. 5. 14:56

 

 

 

 

 

 

                             가빠옹당이

 

 

                                                                   강길수┃姜吉壽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가빠옹당이가 궁금해서다. 팔월 초순, 오후 다섯 시가 가까운 시간인데도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후끈 덮친다. 산 초입이다. 아파트 공사판에 가려고 순번을 기다리는 레미콘트럭이 매캐한 가스를 내뿜는다. 가스를 덜 마시려 가파른 임시 나무계단을 빨리 오른다. 숨이 가빠진다. 계단 오른 쪽으로 가빠무덤이 보인다. 얼마 전 새로 생겨났다.

  정자가 있는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나, 두 번째 봉우리도 통과한다. 이윽고 세 번째 봉우리가 보인다. 걸음이 더 빨라진다. 소중한 것이라도 감싸 덮은 듯, 초록 가빠무덤 세 기가 보인다. 제일 위쪽에 내가 찾는 무덤이 있다. 재선충材線蟲에 감염되어 죽은 소나무의 육신을 잘라 쌓고, 살충제 처리를 하여 가빠로 감싸 덮어 만든 무더기가 가빠무덤이다. 성한 소나무를 재선충의 감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다. 즉, 죽은 소나무의 무덤이자, 산 재선충의 살 처분장이다. 이 산에는 이런 무덤이 많다. 소나무들이 사람의 방제 활동으로 무사히 제 생을 다 살았으면 좋으련만, 지금도 새로 죽은 것들이 이곳저곳 붉은 잔해를 드러내고 있다.

  재선충의 소나무 공습攻襲이 심각한 모양이다. 재선충병은 소나무에 피해가 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린단다. 치사율이 높아 재선충이 기생한 소나무는 수개월 내에 모두 다 말라 죽고 만다고 한다. 간선도로변의 산 초입에도 가빠무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이 산에서 소나무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병충해가 없는 세상은 없을까. 오래 살면 오, 육백년을 산다는 커다란 소나무가 그 일할도 못 살고 작은 벌레에 꼼짝없이 생명을 빼앗기는 것을 보면, 지구촌 삶의 방식이 참 어이없기도 하다.

  드디어 찾던 가빠무덤에 도착했다. 궁금했던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옹당이 물이 다 말랐나보다. 더 가까이 가 보았다. 몇 개비 걸쳐 있는 솔잎 아래 조금 고여 있다. 다행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옆이라 주인공이 물을 먹는데 편치 않았을 것이다. 옹당이에 물이 가득 고여도 양이 적어 며칠 가지 못한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플라스틱 병을 잘라 옹당이 위에 놓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하게 여겨져 그만두었다.

  주인공을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작년 가을, 이 길이었다. 두 번째 가빠무덤을 지나 세 번째 가까이 갔을 때, 작은 새 한 마리가 귀퉁이에서 급하게 포르르 날아올랐다. 나는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반환점을 돌아 다시 내려오는 길. 막 그 가빠무덤 옆에 당도했는데, 이번에는 새 두 마리가 같은 귀퉁이에서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조금 이상했지만, 그냥 사오 미터 지나쳤다. 아무래도 다른 느낌이 들어, 되돌아 가 새가 날아오르던 부위를 살폈다.

  이게 웬일인가! 가빠가 접어지며 울어, 귀퉁이에 조그만 옹당이가 생겨 빗물이 고였던 것이다. 그 물로 작은 새들은 갈증을 풀고 있었다. 신기했다. 저 새들이 이 작은 옹당이에 빗물이 고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닐 테고, 옹당이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았을 건데 말이다. 물 수색조를 편성해 숲을 뒤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지. 날씨가 워낙 더워 본능적으로 물 있는 곳을 느꼈을 거야. 물병의 물을 가빠옹당이가 가득 차도록 부었다. 그리고 이 산에 올 때마다 물을 나누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집에 돌아와 만났던 새의 종류를 검색해 보았다. 박새였다. 그러지 않아도, 이 산에 사는 새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아파트 개발로 새들이 즐겨 놀고 숨던 덤불이 사라지고, 청설모의 번식 등으로 새들의 서식환경이 나빠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인간사회가 어지러워지니 자연도 닮아 가는지, 반대로 자연이 종잡을 수 없이 변하여 인간도 급변하는지 모르겠다. 비록 환경이 어려워질지라도, 내 작은 도움이 박새가 사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랐다.

  청천벽력 같은 재선충의 기습을 당해 요절한 소나무가 잠든 곳, 재선충의 독고려장이기도 한 가빠무덤. 그 한 귀퉁이에 생긴 작은 조롱박만한 옹당이. 옹당이가 새들의 생명수 저장소가 되다니. 비록 한줌도 안 되게 고인 물이지만, 물 없는 산위에서 마실 물을 찾아낸 박새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내가 박새라도 된 듯 덩달아 즐거웠다. 이후, 갈 때마다 물을 나누며 박새들은 저절로 내 관심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 식구 같았다.

  자연의 섭리는 알수록 놀랍다. 인간이 만든 가빠무덤마저 귀퉁이의 옹당이를 통해, 다른 생명을 살려내는 도구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문화재도, 집도, 도시도 섭리 안에서는 그 도구들에 불과하다. 자연은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섭리의 길을 가고 있다. 자연은 어머님의 품이다. 사랑방이다. 쉼터다. 그러기에 따사하다.

  관심은 사랑의 시작이다. 자연에 대한 내 작은 관심이 그 사랑방에 함께하여 박새 가족과 만나 사귀고, 식구같이 사랑하는 첫걸음이 되었다고 믿는다. 가빠옹당이로 자연사랑 길을 일깨워 준 하늘의 섭리가 참 고맙다. 가빠옹당이의 기쁨을 선물해 준 박새도 고맙다.

 

 

 

-  <에세이 21> 2016.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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