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아래의 한때(이장욱) 분석
강 길 수
1. 시인 약력
1968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노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4년 『현대문학』에 「시든 꽃 피어있네」등을 발표하여 등단.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민음사, 2002),『정오의 희망곡』(문힉과 지성사, 2006) 등이 있고.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 있음.
2. 들어가며
사람의 정신활동은 크게 지적인 활동과 정서적인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는 사람의 이 두 정신 활동에 어떤 관련이 있을까? 어느 한 편에만 관련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더 강조되는 편은 있다고 생각된다. 예술은 ‘일정한 재료와 양식, 기교 등에 의하여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1)이라고 정의되고, 문학은 ‘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문자로 나타내는 예술’2) 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시는 지적 정신활동 보다는 정서적 정신활동이 더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곧 시가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시를 대할 때, 과연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작자와 비평가들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는 이미 진정한 생명력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여기서 분석하고자 하는 이장욱의 시 「등나무 아래의 한때」도 이러한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3. 시 본문
내가 만난 女子는 한 女子, 그 女子는 바람 불듯 흘러가는 종이봉지. 내가
만난 女子는 단 한 女子, 그 여자는 바람 부는 수유리에 스며 흔적 없는 그날,
오후의 쓸쓸한 빗물.
생은 다른 곳에. 가령 수유리 수유 시장 입구 수유 분식집 앞을 지나는 오후
세 시의 바람. 바람 속을 지나는 저녁 일곱 시의 또 다른 바람. 내리는 어둠과,
더불어 펄럭이는 단 한순간의 골목을 지나가는 아주 오랜 여행 속에서,
내가 만난 女子는 한 女子, 수유리 수유 시장 입구 수유 분식집 앞을 무심한
얼굴로 지나던 단 한 女子, 그 女子는 오후 세 시의 바람과 저녁 일곱 시의 또
다른 바람을 지나는 그날, 오후의 우연한 빗물.
그 女子 바라보며 등나무 아래 앉아 있는 새벽인데, 새벽을 지우며 점점이
내리는 비, 나는 바람이 태어나는 바람의 고향을 생각하여 어이없는 한때에 고
여 있네. 어이없이 등나무 아래의 한때를 흘러가는 어느 다른 생의 여자, 저기
저 다른 생의, 단 한 女子
4. 분석
이 시의 느낌은 우선 종교적인, 그 중에서도 불교나 힌두교적인 인상을 받는다. 시의 결론이 ‘다른 생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종교적인 요소는 시의 주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보조 장치란 말이다. 시적화자가 말하는 주인공 ‘한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여자로 비유된 다른 무엇인지 독자로서는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리고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흘러가는 것 또는 지나가는 것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을 어필해 주고 있다.
제 1연에서 여자는 ‘흘러가는 종이봉지’와 ‘쓸쓸한 빗물’로 형상화된다. 바람에 떠밀려 흘러가거나 날아가는 종이봉지는 바로 이해할 수 있으나, ‘바람 불 듯 흘러가는 종이봉지’는 시적 표현이라 해도 정황은 이해되나 정확한 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 바람은 자기 피부에 분다든가 영향을 받는 대상물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종이 봉지’로 표현된 여자가 ‘빗물’로 변신하는 대목은 더 이해하기 힘 든다. 종이봉지는 비에 젖어 축 늘어질망정 빗물에 녹아 흔적 없이 스며들 수 없다. 각기 다른 비유라 하더라도, 종이봉지의 이미지와 빗물의 이미지는 상관되기 어렵다. 따라서 1연에서의 ‘여자’의 존재는 논리적 모순위에 서 있다. 다만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여자가 수유리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라짐은 죽어 수유리에 묻혀있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 수유리에서 이별했을 수도 있다.
제 2연에서 독자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볼 수 있다. ‘생은 다른 곳에’가 그 것이다. 시의 전 연을 흐르는 ‘바람’과 2연을 제외한 세 개의 연에 있는 ‘빗물’과 ‘비’의 의미가 현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어주는 종교적 의미 부여를 해 주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종교적인 표현들이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 같지는 않다. 떠나버린 여자를 강조하기위한 기법으로 보인다. 2연에서 강조되는 것은 단연 ‘바람’이다 오후 세시의 바람과 저녁 일곱 시의 또 다른 바람은 시간의 흐름이나 변해가는 것들을 연상케 해주고 있다.
제 3연은 1연과 2연을 종합하여 반복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수유리 수유시장입구 수유분식집’ 앞을 우연히 지나가던 존재가 화자가 누누이 말하는 단 한 여자다. ‘수유리’는 서울의 한 지명이지만, 그 이름에서 독자는 흐름, 지나감, 사라지는 것들을 감지할 수 있다.
제 4연, 마지막 연은 이 시의 결론이다. 시적 화자는 등나무 아래 앉아 있다. 보통 등나무 그늘은 사람들이 쉬는 곳이다. 그런데 화자는 쉬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새벽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료하게 쉬는 장소에서 새벽까지 앉아서 ‘등나무 아래의 한때를 흘러가는 어느 다른 생의 여자’를 바라보듯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추억은 차라리 체념처럼 보인다. ‘바람의 고향을 생각하여 어이없는 한때에 고여 있네.’하고 지금 깨달은 일이나 감탄의 뜻을 서술하는 데 쓰이는 종결 어미 ‘네’를 여기서만 유일하게 쓰고 있어서다. 더 나아가 그 여자는 ‘저기 저 다른 생’의 ‘단 한 여자’이다.
화자가 만난 여자는 우연히 만났다고 하지만, 화자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여자는 지나가는 바람이나 흘러가는 종이봉지, 수유리, 스며든 빗물, 내리는 비로 형상화 되어 스러져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렇게 지나가거나 스며들고 없어도 화자는 새벽이 되도록 허허한 등나무 아래서 홀로 그 여자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 더욱이 ‘다른 생의, 단 한 여자’로 그리움을 종결지음으로써 얼마나 마음깊이 자리 했으면 다른 생의 여자라고 까지 할까하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역설의 장치를 화자는 하고 있는 것 같다.
5. 나가며
이 시는 시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많은 독자가 이해하기는 난해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노래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자를 빌어 변하고 흐르는 생에 대한 허무와 슬픔을 노래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비평가들이 말하듯 이장욱은 ‘미래파’로 불리는 시풍의 중심에 서 있다. ‘다른 서정’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시를 쓰는 것 까지 탓할 수는 없지만, 많은 독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몽롱한 시를 써 놓고, 그들의 감동을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한국 시는 ‘에세이적 글쓰기 제 4의 문학이 떠오른다.’와 같은 신문기사가 말해주듯, 많은 독자들의 외면에서 그 메시지를 분명히 읽고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1) 새 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91
2) 새 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91
(2008. 6. 29. 글사랑 창작교실 과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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