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제비

보니별 2006. 8. 15. 15:37
                           제           비



                                                                          강   길   수




어제 낮, 효자 역 부근에서 제비 한 마리가 그 옛날 모습으로 힘차게 나르는 것을 보고 잃은 친구를 되찾은 듯이 참으로 반가웠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도회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 아파트에 두 마리의 제비가 역시 힘차게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부슬부슬 오는 비를 맞으며 나는 한 참 동안을 그리웠던 제비의 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근자엔 여름철 그 어디를 가도 무더운 여름 하늘을 힘차게 가르며 비상하는 제비를 볼 수 없어, 꼭 있어야 할 친구가 빠진 모임처럼 허전한 마음이었는데, 그 날렵한 제비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난 유월 말, 할아버지 제사 드리러 고향에 갔을 때, 고향 집 처마에 그 옛날 제비가 튼 둥지에 제비는 온 데 간 데 없고, 웬 딱새가 새끼를 치고 있어 서운하였으나 한 편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제비들의 그 유연하고 날렵한 비행 솜씨를 보며, 꿈을 꾸고, 제비가 온다는 먼 남쪽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을 익혔었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제비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란 것을 알았기에, 나는 제비를 더 좋아하였다. 이따금씩 금오산 너머에서 굉음을 내며 나타났다가 쏜살같이 사라지는 전투기를 보며, 아마도 저 비행기는 제비를 보고 만들었을 거야……' 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책에서 '흥부전'을 읽고 난 후부터는 제비가 무언가 좋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바라기도 했었다.


우리 민족에겐 '권선징악'의 길조로 자리매김 한 제비…….


그 제비가 한 시간에 얼마나 먼 거리를 날아가고, 얼마나 엄청난 유해 곤충을 잡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 하고 싶지 않다.


우리 작은 마을의 초가집들엔 몇 개씩의 제비 둥지들이


어김없이 지어져, 우리의 봄, 여름, 이른 가을은 제비와 함께 살아내는 멋진 계절이었다.


어느 날, 평화로운 새들의 우리 마을 하늘에 침입자이자 공포의 포식자인 솔개나 독수리가 나타나면, 제비들은 어김없이 감히 누구도 엄두 내지 못하는 포식자 퇴치작전을 시작하였다.


제비들은 침입자인 하늘의 제왕들 옆을 시위하듯 끈질기게 저지 비행하며, 약자인 작은 새들을 도우려는 듯 무언가 열심히 "지지베베, 지지베베" 하고 부르짖었다.


그런 시간이 한참 진행되는 장면은 이러했다.


솔개나 독수리들은 몇 번 요동치듯 하강과 상승을 시도하고, 그래도 줄기차게 제비들이 함께 에워싸고 진로를 방해하며, 시위를 계속한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다보면 지친 하늘의 제왕들은 이윽고 고도를 높여 저만치 멀리 물러갔다.


지난 제삿날 제비가 없는 고향 산골엔 밤이 되니, 온갖 곤충들이 얼마나 많이 날아드는지 방문을 열어 둘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모기는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살이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날 벌레와 나방, 벌들까지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나는 제비가 왜 사라졌는지 모른다. 그러나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과도한 농약 사용 때문임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로 인한 생태계 평형은 깨져 곳곳에서 그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은 우리가 기 잘 아는 사실이다.


‘만물의 영장'이란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란 살아있는 행성에 기생하면서 이상 번식(?)하며 벌인 행태는, '환경파괴'란 필연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이제 그 환경의 보복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 참으로 오래 만에 돌아와 다시 만난 저 날렵하고 우아하며, 세련되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제비가, 제발 이 암울한 세대에 새로운 희망의 소식을 전하는 '환경 복음의 사도(使徒)'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이 이 지구란 살아있는 푸른 행성의 '유일한 악성 바이러스'란 오명을 벗어버리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 2002. 7.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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