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노변(路邊)에서

보니별 2006. 8. 15. 15:24

                   노변(路邊)에서


                                                   강     길    수




세레나!


늦가을 달이 하얗게 하늘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나는 달을 보노라면 세레나를 생각하고, 세레나를 생각하노라면 달을 보거나 연상하게 됩니다.


그 것은 세레나의 이름이 그리스신화에 있는 달의 여신 ‘셀레네’와 같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달이 내게 주는 이미지들과 세레나에게서 내가 느끼는 이미지들이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세레나!


그 날, 그 노변(路邊)에는 하얀 가을달이 별들 총총한 가을 하늘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전우들과 더불어 극한 상황[戰爭]하에서 살아남고 그리고, 승리하기 위한 연습에 투입되어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승리하기 위해서는 살인기(殺人器)의 부리[口]를 상대[敵]에게 정조준(正照準)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약육강식이란 생존의 법칙이 그 곳엔 존재했고, 인간 최대의 비참과 치부가 서로 맞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처참한 대립으로부터 은폐된 것이고 보면, 숙연한 자세로 인간의 숙명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레나!


그런 거기에도 달은 예의 그 하얀빛을 내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것은 사상과 이념을 떠난 소박하고 해맑은 지성(智性)과도 같은 그런 빛이었습니다.


행인 없는 일등도로(一等道路)‥‥‥


이름 하여 북진 통일로‥‥‥. 


간혹, 사연 싣고 흘러가듯이 자동차의 두 줄기 헤드라이트 광선과 엔진 소리만 휙휙 지나갈 뿐, 아무도 없는 노변에는 달빛만 고요히 나의 극한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 줄기 소슬바람이 휘 몰아 지나갔습니다. 하여, 우수수 포플러 잎이 아스팔트 노면에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극복해야만 할 과제, 영원한 인간의 과제, 그리스도의 과제가 그 곳엔 있었건만 얼마마한 사람들이 그 것을 알려는지‥‥?


세레나!


그 날, 그 노변에는 하얀 달빛 속에 맞댄 살인기의 부리와 부리, 그리고 흩날리는 낙엽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먼 곳에서 새벽의 개 짖는 소리,


찬란한 별 빛 속에 새벽 종 소리 들리니, 오늘 예서 이만 맺을까합니다.


안녕!


 


+++ 군에서 제대한 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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