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피기 시작한 이팝꽃잎들이 보도 위에 내려앉는다. 그 꽃잎을 밟고 걷기가 미안하다. 또, 담장에서 활짝 웃는 장미꽃이 행인들을 반긴다. 신록도 질세라 온 누리에 생기를 내뿜는다. 생명 찬란한 2025년 을사년 오월이다.
오월을 맞으면, 해마다 5·16과 5·18이 동시에 마음을 파고든다. 올핸 왠지 그 마음이 더 짙다. 학생, 군인, 직업인으로 살아오면서 두 역사(歷史)를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품으며 지냈기 때문이리라. 한국인은 누구나 이 두 역사와 함께 살고 있다. 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 선진국화 과정에 두 역사가 살아 숨 쉬니까 말이다.
나도 다시, 이 오월을 살아내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오가는 동네 공원 보도블록 위엔 웬일인지, 그 많던 개미들이 하나도 안 보인다. 몇 해 전만 해도, 개미를 안 밟으려 조심하며 걷던 곳이다. 벌들이 사라져 수분(受粉)이 안 된다는 보도가 나온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생태계가 생물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더 빠르게 변하는 올 오월이다.
급변하는 것들이 어디 생태계뿐일까. 우리 사회가 보이는 이 오월의 참담한 모습들이, 생태계 변화보다 더 깊이 가슴을 파고든다. ‘민주’와 ‘국민’을 선동의 마약으로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평생 아니, 자자손손 기득권을 누리려는 작태가 눈에 뻔하다. 이래도 우리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는 거의 외면한다. 자정 능력은 팔아버렸을까.
정치의 근본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다.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리민복을 위해 헌신하는 게 하늘의 섭리다. ‘민주’라는 말을 당명에 담은 거대 야당은 국리민복을 일부러 외면하나 보다. 오로지 자당 대선후보를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하니까. 그들은 주요 기관장과 국무위원, 대통령 탄핵도 모자라 대법원의 판결까지 시비 걸며, 대법관들을 탄핵과 청문회로 위협을 한다.
재판 기피, 연기 등 꼼수로 법정 재판기일을 몇 배씩 어기며 대선후보가 된 피고인 1야당 대표. 그는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에도 후보 사퇴는커녕, 재판이 대선 운동을 저해한다고 압력을 가해 선거 후로 미루게 했다. 이로써, 사법부는 1극 체제 야당 권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거대 야당이 삼권분립을 깨부수며, 나라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 너무 답답하다.
5·16은 ‘조국 근대화’로 경제발전을 이루며,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역사다. 5·18은 5·16의 기초 위에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운 역사다, 한데 지금, 거대 야당은 ‘탄핵’과 ‘방패 입법’이란 두 요괴 방망이를 마구 휘두른다. 방망이엔 국리민복도, 자유민주주의도 안 보인다. 부정선거 증거 동영상이 국회 소위 회의장에 상영되어도, 모르쇠다. 이런 야당의 모습을 5·18 영령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볼까.
이젠,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에 몸서리친다. 그래도, 5·16과 5·18을 품은 오월을 다시 살아내면서 간절히 빈다. 유월 대선에서 당일 투표 등으로 부정선거를 막아내어, 생명 찬란한 푸른 오월처럼 나라가 국리민복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강길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