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시대, 헷갈리다

보니별 2022. 12. 5. 02:09

 

                                         등록일 2022.12.04 18:21                          게재일 2022.12.05

 

 

  ‘날더러 어찌 살라고 이리도 갑자기 불어닥칩니까. 야속해요. 헷갈려요!’학교 담장에서 들려 오는 소리다. 소리 내는 장미꽃 붉은 볼에 냉기가 스며있다.

 

  좀 듬성듬성하게 아직도 푸른 잎 사이로, 네댓 송이 장미꽃 붉은 볼이 초겨울을 밝힌다. 11월 마지막 날부터 밀어닥친 한파를 담장에 매달린 채, 장미꽃은 무방비로 사흘째 견뎌내고 있다. 더 매서운 칼바람 덮쳐오면, 저 장미꽃과 잎은 산 채로 얼어버릴 것이다. 그리곤 마른 미라가 되었다가 스러져 갈 테지. 운 좋아 장미 뿌리 사는 땅에 떨어지면 훗날, 장미꽃으로 환생할 수도 있으리라.

 

  장미뿐만 아니라 아직 잎 푸른 나무와 많은 풀, 꽃을 피워낸 화초들도 높바람에 헷갈리다 산 채로 얼어 생을 다할 터. 자연은 늘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라고 누가 말할지 모른다. 아니다. 한 세기도 못 산 내 눈에 비친 자연은, 어릴 때와는 너무 달라졌다. 기후변화 시대라 해도 요즈음의 자연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사계절이 한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꼈던 게 엊그제 같다. 한데, 하루에 기온이 초가을에서 한겨울로 간 것처럼 변하니 사람도, 식물도 헷갈리고 어지러운 것이리라.

 

  그래서일까. 한 주 전쯤 제자리 돌기라도 한 듯, 몇 시간 약한 어지럼증이 왔었다. 빈혈 증세거니 했는데, 아내의 성화로 이튿날 난생처음 신경과에 가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이상소견 없음으로 나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이 들며 기력이 쇠하기 때문일 수 있겠지만,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자연환경 요인과 정치 사회적 요인, 심리적 요인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바닷물이 상승하여 육지를 삼키는데도, 우리는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제주도를 비롯한 동해안 등 국토의 해안선에 해수면이 오르며 심각한 변화를 일으켜도, 언론과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미온적이다. 꿀벌개체수나 곤충이 줄어들어 농민들이 작물 재배에 수분(受粉)용 벌을 키우거나, 사람이 수분 작업을 하는 사태에 이르러도 사회는 무관심하다.

 

  헷갈린다. 나와 너, 우리나라와 지구촌도 헷갈린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촌을 헷갈리게 한다. 민생을 버린 채 핵폭탄을 생명줄로 삼아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도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간이 부었는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정치권의 행태가 침묵하는 다수 국민을 헷갈리고, 분노케 한다. 명분 없는 파업으로, 나라 경제를 볼모 잡는 소위 귀족노조들이 우리를 헷갈리고 허탈하게 한다.

 

  우리나라 나아가 지구촌은, 헷갈리는 시대를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46억 년이라는 지구촌 역사에서 자칭 만물의 영장 인간이란 종이 등장한 것은, 길게 잡아 800만 년 전이라 한다. 현생인류와 가까운 계통은 역사가 300만 년 정도라고 본다. 하여, 인간이 지성체라면, 지구와 다른 생명체의 입장도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인간은 자연을 헷갈리게 하는 악질변종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이제 인간은, 자기 욕망과 욕구를 극복하며 이 헷갈리는 세상과 자연을 치유하는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 길이 비록, 탈 문명을 요구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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