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외롭던 이야기방

보니별 2022. 12. 11. 22:14

 등록일 2022.12.11 17:47                                       게재일 2022.12.12

 

 

  허전하다. 출퇴근 때마다 모서리를 돌며 안을 쳐다보던 작은 방이 사라졌다. 사라진 바닥엔 정사각형 새 보도블록이 어설프게 깔렸다.

 

  작은 방은 이따금 풋풋함이 넘쳤다. 중학생들이 한두 명 혹은, 두세 명 붙어서서 손에 든 것에 귀를 들이대며 얘기꽃 피우던 방이다. 때론 깔깔대고, 때로는 희죽거리거나 히죽대고, 어떤 날은 어두운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옆엔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은행도 있지만, 내가 본 이야기방은 중학생들을 빼면 거의 비어있었다. 하여, 운동장 밖 모퉁이에 홀로 섰던 이야기방은 외로워 보였다. 외로움 못 이겨 떠났을까.

 

  시대 변화가 잘 드러나는 곳의 하나가 된 이야기방, 이름하여 공중전화 부스. 공중전화는 통신수단의 발전 단계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존재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공중전화는 사람들의 소유하지 않은 생활필수품이었다. 즉시성, 신속성, 편리성에다 익명성까지 제공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나, 사람들의 애환 담긴 이야기방도, 혹독한 경쟁력 시장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이 없었던 젊은 날, 타지나 외국에 출장을 가면 공중전화를 많이 사용했다. 한 번은 엘에이 공항에서 공장장이 공중전화를 하는 사이, 007가방 하나를 들치기 당하는 일도 있었다. 나도 그 곁에 서 있었는데, 어느새 훔쳐 갔는지 내가 어안이 더 벙벙했었다. 다행히 출장서류는 내 가방에 있어서 무사했다. 이처럼 공중전화 부스 이야기방은 사람 삶이 그대로 서린 현장이다.

 

  내 기억엔 휴대폰이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간 생활의 온갖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통해, 5세대 이동통신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 ‘가상현실( Virtual Reality),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술등을 구현한다니 말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삶의 모든 부문에 바라는 것을 실시간 이룰 수 있다 한다. 가히,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사라진 공중전화부스 자리에 깔린 보도블록을 밟고 선 내 마음은 허전하고, 불안하며, 무엇에 홀린 듯하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편리성에 중독되며, 자기도 모르게 과학기술이란 냄비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운전하여 여행 갈 수 있는데 시내버스, 시외버스, 완행열차를 갈아타고 고생고생하며 여행 다니던 때가 왜 더 행복하게 느껴질까. 내가 구세대 꼰대이기 때문일까.

 

  이제, 이야기방에서 풋풋한 중학생들을 더 만날 수 없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예전 같은 얘기꽃들을 피울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지난여름, 직장의 법정 교육 참가차 오랜만에 서울 지하철을 탔었다. 대부분 젊은이와 일부 나이 든 이들도, 객차 안에서 모두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이 과연, 공중전화 부스의 전화처럼 고맙고 요긴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을까. 내 마음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오늘 퇴근길에도, 이야기방이 외롭게 서 있던 자리에 내 마음은 머뭇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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