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만남, 20221124

보니별 2022. 11. 28. 16:28

                        등록일 2022.11.27 17:48                                게재일 2022.11.28

 

 

 

  눈길이 저절로 멈추었다. 늦가을, 그것도 11월 하순에 이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평소 출근보다 1시간 빠른 출장길이다. 북향 7번 국도가 제법 붐빈다. 벌어먹으려고 직장가는 차들이 꼬리를 문다. 알게 모르게 이 근교에도 일자리들이 생긴 결과이리라. 송라를 벗어나자 차량이 줄었다. 저지난밤 100mm 안팎의 많은 가을비가 내렸던 흔적이 도로 가나 들녘에 드러나도, 생각만큼 심해 보이지 않는다.

 

  일찍 집을 나선 덕인가, 경고인가, 깨우침인가. 눈길 멈춘 곳 앞 도로 가드레일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원자력 발전소의 한 건물 녹지 곁 도로다. 찬찬히 살펴본다. 저쪽 크지 않은 앙상한 모과나무 밑에, 노란 모과 한 개가 낙엽과 섞인 푸른 풀들을 베고 누워있다. 그 오른편에 낮은 관목 두 그루가 마지막 잎새 몇 개를 달고 떤다.

 

  나무 앞 제법 넓은 면적에 어린 클로버가 밭을 이뤘다. 6월의 클로버만큼이나 많은 흰 꽃을 피워냈다. 그 밭 가장자리엔 노란 민들레꽃 하나 해님이다. 곁에 서 있는 민들레 관모 서너 송이는 작은 솜사탕이다. 솜사탕 뒤로 나지막한 옥향나무들이 가드레일을 따라 줄지어 섰다. 용케도 무시무시한 예초기 날을 피했을 개망초 한 포기가, 두 옥향나무 사이에서 계란프라이 모양 꽃 일고여덟을 달고 늦가을을 노래한다.

 

  6일만 지나면 12월인데, 꽃 피운 클로버와 민들레와 개망초 그리고 푸른 풀들, 낙엽과 앙상한 나무들은 어떤 메시지를 사람에게 보내고 있을까. ‘당신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봄이라고 착각한 채 살고 있어요.’라고 할까. ‘우리는 속이지 못해요. 이 발전소 근로자들처럼 정직하게 살아낼 뿐입니다.’라 말할까. 또는 지구촌 아니, 우주 공동운명체 안에서 우리는 설계된 디엔에이대로 살잖아요.’라고 할까.

 

  땅거미 내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돌아오는 차창 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1124일 만난 클로버꽃과 민들레꽃, 개망초꽃, 누운 모과, 앙상한 가지, 팔랑이는 마지막 잎새는 정직하고, 진실했던 거다. 기후변화에 따라 살며,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주어진 삶을 그대로 주위에 보여주고 있다. 마치 발전소 현장 근로자들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어떤 성직자들은 대통령이 죽기를 바랐다. 1야당 대표는 개발사업 비리 의혹에 사업 시행 지자체 최종결재자이면서도 모르쇠가 되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는 오만으로 일관한다. 어떤 정치권은 자기편의 일방적 안을 정의라고 우기며, 왜곡을 일삼는 언론을 무기로 선동하고 강요한다. 북핵이 국민을 위협해도 정치권은 걱정이 없다. 일군의 선각자들이, 부정선거 문제를 복음처럼 외쳐도 응답하는 정치권은 없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진실과 정직을 버린 맛이 간 사회다. 국민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름지기 정치인은 국민 목소리를 찾아 듣고, 그 해결의 길에 나서야만 한다. 정치권이, 변화에 정직한 식물과 자기 일에 정직한 근로자들의 숨은 진실을 본받는 길. 그 길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살리고 더 꽃피워 열매 맺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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