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어떤 역사 개입

보니별 2021. 7. 19. 22:26

 

                           등록일 2021.07.19 18:35                                  게재일 2021.07.20

 

 

  어찌 되었을까. 며칠간 장맛비가 내렸으니 엉망일 테지. 얼른 신발을 갈아 신고 작은 텃밭으로 향했다. 산 조릿대를 베어내 정성들 들여 만들었던 오이 넝쿨 버팀대로 먼저 눈길이 갔다. 버팀대도 오이 넝쿨도 큰 이상은 없다. 다행이다.

  우선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밭 안쪽엔 물이 덜 빠져 오이와 가지의 잎이 시들해 보였다. 수로 보수를 마치자, ‘장맛비에 점심용 간이 탁자로 쓰는 판자가 젖었겠구나!’ 싶어 보관 장소로 갔다. 비를 막으려 덮어 두었던 커다란 비닐 막(膜)을 눌렀던 나무 원형 의자를 들어냈다. 다음 순간,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의자 밑, 그러니까 비닐 막 위에 장마를 피해 이사 온 애집개미로 보이는 작은 개미 집단이 흰 알, 애벌레들과 함께 확 드러났다. 이 밭에서 풀을 베거나 뽑으면서 숱하게 보아온 현상이지만, 이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 주간 만에 어찌 이 많은 식구가, 하필 비닐 막 위를 집으로 삼아 이사하다니 놀랍다’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딜레마에 빠졌다. 눈앞의 사태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비닐 개미집을 밭둑 높은 곳에 털자고 결정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비닐 막을 치워야만 한다. 비닐 막을 높은 둑으로 가져가 개미와 알, 애벌레, 먹이들로 가득 찬 개미집을 탈탈 털어 냈다. 개미와 그 집은 풀과 낙엽, 나무 가리비 등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나는, 개미들의 역사에 비록 한 번이지만 절대적 개입을 하고 말았다.

 

  이런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병정개미일지 여왕개미일지 모를 개미 리더는, 어찌하여 장맛비를 피하겠다고 인간의 비닐 막을 피난처로 오판(誤判)했을까. 사람들이 개미를 2차원적 곤충이라고 보듯, 본능이나 판단력이 모자라서일까. 비닐이 석유를 가공해 인간이 만든 것임을 본능으로라도 느끼지 못했을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식구들과 삶의 터전, 집이 낯선 땅에 내동댕이쳐진 저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만일 저들이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못 살겠다고 모두 자살할까. 비닐 막으로 이사를 결정한 리더를 탄핵, 축출할까. 내전이라도 벌일까. 아니면 천재지변이라고 자위하고, 추슬러 또 새집을 지을까. 하지만, 저 개미들은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날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새집 짓고 알과 애벌레를 모아들이며, 새로운 알을 낳고 분가도 할 것이다.

  현 우리 사회는 어떤가. ‘코로나19 사태’에 비춰보더라도, 국민들은 저 작은 개미 집단 같은 처지일 것만 같다. 권력과 돈과 정보를 가진 자들의 교만한 오판으로, 국민은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 거처를 개미의 비닐 집 같은 집으로 이주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세대 몫을 빼앗는 나랏빚으로 ‘재난지원금’이니, ‘기본소득’이니 하며 ‘공짜’란 마술지로 포장하여 펑펑 던져주었거나 주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역사의 주인공이 개입해 그 비닐 집을 탈탈 털어 낼 때 ‘민주와 자유, 자율과 책임’의 아름다운 집이 무너져 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될까 봐 두렵다.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살아내야만 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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