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대통령의 묵주 반지

보니별 2021. 6. 22. 21:10

                               등록일 2021.06.21 20:09                               게재일 2021.06.22

 

 

  밖에서는 묵주 반지를 끼고 다닌다. 걸으면서 기도하기 위해서다. 처음 성물(聖物) 판매소에 묵주 반지를 팔면서부터였으니, 강산이 몇 번은 변한 세월이다. 내 것은 은 묵주 반지다. 금 묵주 반지는 비싸서 우리 성당 판매소에는 예나 지금이나 없다.

 

  묵주 반지는 간편하게 묵주기도를 바치기 위해 만든 도구다. 묵주 알이 59개나 되는 5단 묵주는, 외출 시엔 불편해서 묵주 반지를 쓰는 신자들이 많다. 김연아 선수가 묵주 반지를 끼고, 성호를 그으며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하는 장면을 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었다.

 

  묵주 반지 낀 사람을 보면 어디서든 한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 4년 전 봄, 제19대 대통령이 취임했었다. 집무실에서 일하는 새 대통령이 손에 금 묵주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을 TV에서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의 묵주 반지! 그래. 뭔가 제대로 되겠구나!’ 하는 믿음과 희망도 뒤따랐다. 묵주기도 하는 분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묵주기도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기 위해 바친다. 그것은 이웃을 위한 십자가로 드러나는 사랑의 길이다. 묵주기도의 4가지 주제 곧, 환희·고통·영광·빛의 신비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간 길을 묵상하도록 한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신앙 대상을 믿고, 행하는 삶이 아닌가.

 

  우리나라 헌법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제20조 제2항에서 규정한다. 이는 종교와 정치가 서로 간섭하거나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정치인과 종교인의 가치관이나 신념까지 제한하는 내용으로 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사는 종교나 정치에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떻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까. ‘하늘나라’일 것이다. 그가 가르친 ‘주님의 기도’의 주제가 바로 땅에 하늘나라가 오기를 빌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늘을 사랑하고, 함께 이웃을 사랑하여 서로 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라’고 복음서들은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의 하늘 사랑은 이웃사랑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한 공동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하늘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이루는 이웃사랑으로 서로 하나가 된 공동체가 바로, 보이는 하늘나라의 모습이란 이 메시지는 얼마나 신선한가. 그렇다면, 정치에서도 이 메시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 대통령은 참 좋은 기반을 가진 셈이다. 대통령이 지난주 오스트리아 수도원 방문길에,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묵주 반지를 낄 것을 권유하셨다’고 원장에게 말했다는 보도는 내게 잊었던 ‘대통령의 묵주 반지’를 소환했다.

 

  그런데 지난 4년 우리 사회는 ‘내로남불’이란 신조어가 대변(代辯)하듯, ‘이웃사랑’이 커나가기는커녕 줄어들어 분열과 반목만 늘어나 보인다. 나만의 착각일까. 가슴 뭉클하게 하던 대통령의 묵주 반지가 정치의 희생물로 변해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지금이라도 어려운 이를 보듬고, 아픈 이를 위로하며, 갇힌 이를 풀어주는 사랑의 길, 묵주 반지의 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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