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안갯길 나라

보니별 2021. 8. 10. 23:58

 

                                   등록일 2021.08.10 19:49               게재일 2021.08.11

 

 

  눈을 비비며 운전대를 잡았다. 가을 새벽, 아직 어둡다, 첫길이다. 내비게이터도 없던 시절이라 이정표만 따라야 했다. 대청봉을 오른다는 설렘으로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하루 허용 등정(登頂) 인원이 다 차 더는 입산할 수 없다는 안내원의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실망했다. 꼭두새벽부터 서둘렀는데, 너무 아쉬웠다. 이왕 온 김에 한계령 고갯길이나 다 넘어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인제 방향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가 장막처럼 눈앞을 가로막았다. 일행들은 ! 설악산 안개다!’하고 소리쳤지만, 운전대를 잡은 나는 되레 바짝 긴장되었다. 열 명이 넘는 사람의 안전이 내 운전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안개 장막은 쉬 열릴 것 같지 않았다.

 

  포항시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두 자릿수를 3일째 이어가고 있다. 걱정이다. 셋째 날의 숫자가 보이는 순간, 그 옛날 한계령 안갯길을 운전해 내려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장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안개 속에 처음 기항지에 내리는 비행기 조종사의 심사와도 같을까. 큰 숨 쉬어 자세를 가다듬는다. 저속으로 차선을 지키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이마에 땀이 송송 났다. 탈 없이 원통에 닿았다.

 

  수도권은 거리 두기 4단계 방역수칙을 시행한 날이 제법 오래되었다. 비수도권은 3단계라 하지만, 온 사회에 짙은 안개가 낀 기분이다. 코로나로 앞당겨진 언택트 시대’, ‘메타버스(metaverse) 시대라고 말하지만, 비대면으로 사는 국민은 안갯속에 사는 마음이다. 게다가 자칭 촛불혁명을 기치로 내세우며 시작한 현 정부는, 어디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지 안갯길처럼 도통 알 수가 없다.

 

  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에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취임사를 들을 때, ‘국가 최고지도자의 취임사가 너무 관념적이고, 정서적이다란 생각이 들었었다. 뭔가 안개 낀 날처럼 희미하고 몽롱한 기분이었다. 한 나라는 경제와 외교, 치안과 국방, 교육과 문화, 건설과 교통 등 제 분야가 실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공동체다. 구체성 없는 관념과 정서적 수사(修辭)는 들을 때 기분이 좋을 뿐, 현실이 되기 어렵다.

 

  부뚜막 위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다. 따사한 햇볕에 안개는 걷힌다. 맑은 하늘에서 태양 빛이 식물에 내려앉을 때, 엽록소는 탄소동화작용으로 몸과 잎과 열매를 키운다. 그리하여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도 준비한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안개를 구체적인 기획, 소통과 개방, 협력과 상생의 햇빛을 비추어 걷어 내야 한다.

 

  집권 세력이 소위 적폐 청산의 칼을 안개 속에서 휘두르는 동안, 나라는 사분오열로 갈라져 갔다. 젊은이는 거리를 헤매고, 소상공인은 생존에 아우성친다. 진실의 햇볕을 비춰야 할 많은 언론은 진실을 외면한다. 정의가 그 생명일 법조계 천칭의 추는 권력 하수인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규모 부정선거가 일어났어도 피해 야당은 웬일로 침묵하고, 다윗의 단 한 발 돌 무릿매질은 아직 힘이 부족하다.

 

  하늘의 개입이라도 필요한 세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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