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새봄, 오솔길에서

보니별 2016. 4. 3. 23:00








                                 새봄, 오솔길에서

 

                                                                                                    강 길 수

 

 

   마르첼리노.

   어린 시절, 이른 봄날 도랑가 오솔길. 개나리꽃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샛노란 빛의 경이로움이 지금도 내 마음 영상에 살아있어. 도랑가엔 흐드러지게 개나리꽃 샛노란 빛의 축제가 벌어졌지. 그 아래 졸졸졸 흐르는 도랑물 사이 돌에 앉아 버들강아지를 따 먹던 시절 말이야. 어느 틈에 수양버드나무가지 꺾어 만든 피리가 아이들 입에 물리고, 순식간에 봄 도랑은 버들피리 오케스트라가 벌어지곤 했잖아.

   그럴라치면, 숨 쉴 겨를도 없이 산천을 온통 분홍빛 진달래꽃 곧, 참꽃이 수놓아버리고 말았지. 아이들은 참꽃 꺾고, 따먹기에 혼이 나가버려 시간가는 줄도 몰라 점심 거르기가 일쑤였지

   “이놈들아, 애들이 참꽃 따 먹으면 문둥이가 잡아먹는다!”

어른들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로 아이들을 닦달하였지만, 우리들은 아랑곳 않던 날들. 모두가 입술이 시퍼렇토록 참꽃을 따 먹고, 손에 손마다 가득 꺾어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던 골목길. 처음엔 꾸중하시던 부모님들도 나중엔 포기하셨는지, 되레 어느 산에 가면 더 붉은 진달래꽃이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하셨지.






   마르첼리노.

   나의 새봄은 그 때가 최고였던 것 같아. 젊은 날, 조금 쏘다닌 봄도 있었지. 자기가 뭐 문학도나 철학도 라도 된 듯, 제 최면에 걸린 마음을 달고 이곳저곳 쏘다녔으니. 그러나 이미 그 때는 어린 날 같은 순수한 봄은 아니었어. 너도 알다시피 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길을 숨 가쁘게 달리던 봄들이었으니 말이야.

   자기도 모르게 나이가 들고나니, 왜 자꾸 어린 시절의 봄날들이 떠오르는지……. 역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인가봐. 아니면, 아직도 나는 치기어린 소년에 불과한 거지. 이제 봄은 이만큼 오는데, 내 마음의 봄은 언제 또 오실까. 영영 오지 않으시려는가. 세파의 때가 너무 많이 묻은 게지. 평생 월급쟁이가 무슨 때 낄 여유나 있었느냐고? 그래도 개나리, 진달래 피는 봄은 이처럼 오는데, 참꽃 따 먹던 봄은 오지 않고 있구나.





   마르첼리노.

   문자 없는 편지를 왜 너에게 보냈는지 나도 설명할 재간이 없다. 그저 그렇게 보내고 싶었을 뿐이야. 아마도 오시는 봄을, 내 하잘 것 없는 언어로 오염시키지 말고 그대로 전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할아버지!' 그 어떤 단어보다 연륜의 흐름이 단박 전해왔지. 처음 길에서 아이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의 그 황망함이란……. 며느리 둘을 다 본 아직도, 마음 이편에선 '아니야!'한다. 저편에선 '그래도 세월은 간 거야.'하고. '재미없는 늙은이'로 되어 가는 게 인생이라고? ! 서글픈 내 삶의 오솔길이여.





   글 주제 정하기가 쓰는 것만큼이나 힘이 드는구나. 정해진 것이라면 잘하든 못하든 쓸 텐데. 어찌 보면 이것도 욕심이지. 연습으로 하는 것이니, 무엇이든 주제삼아 쓰면 될 텐데 말이지.



   '기쁨은 관계 속에서 온다!'고 하는데, 그런 관계가 이 새 봄엔 샛노란 개나리꽃같이, 분홍 진달래꽃처럼 맑게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새롭게 오시기를 빈다.

새봄, 오솔길에서.

   오늘 예서 이만 쓸게.

   안녕!






                                                -  2016. 4. 1. 경북매일신문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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