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4.05.13 20:18 게재일 2024.05.14
동네 공원에 핀 커다란 이팝나무 하얀 꽃이 부드러운 목화송이다. 저 흰 목화를 타서 무명을 짜, 옷과 이불을 짓는다면 이 동네 아이들이 다 입고 덮어도 남겠다.
한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팝꽃이 ‘보릿고개 배고픔을 참아 넘기는 달램의 이밥’이었다니, 우리네가 지난날 겪은 고난의 삶이 고스란히 꽃 안에 스며 있다. 가슴 아리다. 지난 산업화 시기 건설현장, 공장, 실험실, 기획, 관리, 설계, 사무실, 정부 부처 등 온갖 일터에서 불철주야 피땀 흘리며 보릿고개를 물리치던 근로자들. 그들은 이팝꽃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살까.
70~80년대 산업화 시기 근로자들은 죽기 살기로 일해 나라 곳간을 채웠다. 그들은 ‘잘살아보세!’로 각인된 산업화 시기와 데모, 최루탄으로 얼룩진 민주화 시기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살아낸 주인공이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메운 운동권 학생들에게 근로자들은 일하며 말했었다. ‘저 친구들은 부모 잘 만나 대학생이 되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않고 데모만 해대는구나. 대학 못 간 우리도 있는데! ’라고….
국민이 자기 벌이로 애들 키우며 저축하고, 이웃과 서로 도우며 안전하게 사는 사회가 왜 비민주사회인가. 일찍이 링컨 대통령이 정의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는 산업화 시기가 오늘보다 더 가깝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때는 국가와 국민, 민족을 위한 잘 살기 정치였기 때문이다. 한데, 오늘날 민주화 세력을 자칭하는 자들에게는 국가와 국민, 민족이 없다. 자기와 제 편 이익에만 혈안 된 행태가 뻔히 보인다. 대수의 법칙 위반 선거결과 숫자들이 그 증거다.
나라가 선진국에 오르는데 근간 역할을 해낸 근로자 눈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진정한 것이라 볼 수가 없다. 솔직히 서민은 지금보다 산업화 시기가 삶의 형평성이 더 높았고, 자유로웠으며, 살기 좋았다. 일부 정치인들이 구금되거나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이 비민주이며 독재라는 주장은 서민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산업화 시기야말로 나라의 진정한 민주화 시기라고 믿는다.
합법적인 정권을 독재나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반대하고 저항하며, 폭력까지 동원해 파괴하려 했던 우리 사회 민주화 운동을 근로자들은 똑똑히 보았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왜 북한과 중국 독재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동맹국 미국을 극렬히 반대하는 것일까. 일은 않고 무슨 단체에 빌붙다가, 슬그머니 민주화에 숟가락 얹은 무리가 나라 곳간 채울 생각은 없고, 빼먹을 궁리만 한다.
5.18이나 세월호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나라 곳간에 빨대를 꽂아 민주화 유공자란 신분 상승을 꾸미는 작업이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빨대 신귀족’을 더 만들겠단다. 합법적 정부를 부정하는 게 민주화란 이상한 등식에 젖은 행태를, 국민은 언제까지 가슴 저리며 바라봐야만 할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가는 일’이 벌어지는 비극을 국민이 계속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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