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장미꽃 미라

보니별 2024. 1. 22. 22:26

 

           등록일 2024.01.22 19:46                                           게재일 2024.01.23

 

 

장미꽃이 미라가 되었다. 산채로 얼어 마른 미라다. 지난 십이월 중순까지 스테인리스 울타리를 부여잡고, 봄이 시샘이라도 할 만큼 많이 피어있던 장미꽃이다.

 

()가 바뀌는 동안 몇 차례 혹한에 맞섰던 장미 나무는, 식솔들이 강제로 얼어 죽임당한 채 몸만 살아남았다. 떠나보내기 아파, 미라가 된 식구들을 부여잡고 된바람에 떨고 섰다. 추위를 버티던 장미꽃 앞 녹지의 쑥들도, 시나브로 시퍼렇게 얼굴이 얼더니 미라가 되고 있다. 둘러보면 이뿐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산채로 얼어 죽는 나뭇잎과 풀들이 많다.

 

식물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즉각 반응하는 존재다. 지난 12월 장미꽃은 두어 차례 한파가 지나가도, 중순까지 꿋꿋이 이겨내 사람을 놀라게 했었다. 연말연시 추위는 심하지 않다고 느꼈었는데, 그 새 얼어버렸다. 첫추위에 동상(凍傷)이라도 입은 걸까. 식물의 생장이 예전과 다르게 변하는 현상은, 지구가 온난화를 넘어 가열화 단계에 있다는 징표란 생각이 가슴을 후벼판다.

 

2015 12 12일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 산업화 이전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2 이하 유지를 장기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기온 상승 1.5 이하 제한도 채택했다. 유로뉴스(Euronews)에 따르면, 2023년 지구 평균 기온은 14.98°C 2016년보다 0.17°C 높았다. , 1991-2020년 평균보다 0.60°C 높았고,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보다 1.48°C 높았다. 이는 파리협정의 제한치 1.5°C를 불과 0.02°C 앞두고 있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은, ‘불 때는 냄비 안의 개구리인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를 알면서도 강 건너 불 보듯 사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물이 시나브로 더워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냄비 안의 안락에 빠져, 뛰쳐나올 생각을 못 하다가 결국 열에 죽고 마는 개구리의 운명. 이처럼 인간도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 현상을 외면하다가 어느 한계의 날, 갑자기 파국적 현실을 만날지도 모른다.

 

산채로 얼어 미라가 된 장미꽃은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 사람이 버리는 오염물로 나빠지는 자연환경이 어떤 한계를 넘으면, 생명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 모든 생명을 부양하는 지구는 환경오염을 더 못 견딜 지경이 되면, 자기 리셋을 한다는 사실도 함께 선포하는 것이리라.

 

온 지구촌이 물 한 방울, 휴지 한 장, 전기 한 등, 기름 한 방울 등 일상 모든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자원을 아껴야 한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 요청 사태 다음 해인 1998년에 벌어졌던 아나바다운동같이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삶을 살아내야만 할 시대다.

 

장미꽃 미라를 조심스레 손으로 만져본다.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꽃잎이 바삭바삭 부서져 까칠하게 내린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 ‘장미야 미안해! 공동 운명체인 너와 자연을 제대로 모르는 우리 인간들이 참 미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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