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편지 가람

11월에 부쳐

보니별 2008. 12. 17. 02:03

 

 

 

 

11월에 부쳐

 

 

마르첼리노…….
덧없이 또 11월이 가고 오늘이 그 마지막 날,
사방이 조용한 밤이야.
낮에 둔탁하고 큰 소음으로 고막을 괴롭히던
인근의 호텔을 노인 병원으로 개조하는 공사의 소음도 사라진

조용한 시간.
 
어제 간 양학동 산엔 앙상한 가지가 더 늘어나고,
연화재 부근 어느 묘역 곁을 지나며 본 작은 꿀밤나뭇잎이,
11월 하순의 추운 날씨에도 그 연약한 가지에 매달려,
5월과도 같이 새싹으로 푸르고 싱싱하게
건재하고 있는 모습이 내 마음에 파고들었어.
지난 추석 벌초 때, 몸이 송두리째 잘려나간 청천벽력의 상황 속에서 그래도 살겠노라고 아니, 살아내겠노라고 싹을 내고 작은 가지로 자라 저리도 푸르게 싸늘한 11월 하순의 바람을 견딘다 생각하니
대견스럽기도 하고, 희망차기도 했지.

 

하지만, 곧 불어 닥칠 설한풍을 생각하니 안쓰럽기 짝이 없었어.
아마도 저 푸른 잎은 설한풍만나 그대로 말라 떨어진다 해도,
5월의 봄처럼 생명을 뽐내며 지난 이 11월을 자랑으로 여길 테지?
그래. 그 것만으로도 저 푸른 잎은 제 몫을 다 한거야.
그리고 기꺼이 설한풍을 맞을게 들림 없다 싶어.

오늘 오후 당도한 월간지의 봉투에 들어있는 내년 캘린더가,
비로소 한해의 끝 무렵, 세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를 잠시

다시 바라보게 하기도 했지.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에누리 없는 괴물은 왜 존재하여 모든 살아있는 존재,
아니 모든 존재를 변화시키며 떡 버티고 서 있는 걸까?
소슬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한 장은 그 비밀을 알고 있을까?
우리는 왜 모든 것이 알고 싶어지는 건가?
저 앙상한 은행나무 가로수와, 그 가지로부터 떨어져 뒹구는
샛노란 저 은행잎도 우리처럼 그런 것들을 알고 싶어 할까?

 

죽음…….
그래. 맞아.
11월이, 앙상한 가지가,
걷는 내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죽음'인 거야.

 

"사람아 너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할지니…."

 

죽기 위하여 태어난 우리들….
하여, 11월의 자연은 생의 조곡을 들려주고,
가는 자의 주검을 낙엽으로 덮어 주는 것이겠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들국화는
바야흐로 찬란한 신데렐라의 모습으로 내 맘을 파고들며 달래었어.
돌연변이처럼 이따금씩 장미꽃도 보이고, 봉숭아꽃도 보이고,
나팔꽃도 보이는 어수선한 시대이지만,
들국화는 메마른 11월의 대지에서,
백설 공주 같은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며
내게
지성과, 깔끔함과, 깨끗함과, 희망과, 애틋함을 모두 선물로 주었어.


그래.

너도, 나도, 그리고 모든 이도 모두 들국화의 홀씨 되어,
오는 겨울을 날아가 새 땅에 둥지 틀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는 거야.
그 봄이 비록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될지라도…….

 

 

 

 

그러니 우리 함께 11월을 기뻐하자!
벗 마르첼리노여…….

 

 

2003. 11. 30. 이른 새벽

 

           - 보 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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