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2024.11.25 18:57 게재일 2024.11.26
저녁, 보도(步道)를 걷고 있다.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 사이 이면도로의 보도다. 교육 출장으로 처음 온 낯선 곳이다. 사흘 지나면 11월 하순이 된다.
조명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보도엔 낙엽이 짙게 깔려있다. 커다란 플라타너스잎과 은행잎, 이름 모르는 잎들이 떨어져 함께 생을 마감하는 곳이다. 저쪽 놀이터엔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늦가을 저녁을 밝힌다. 나무들을 쳐다보니 아직도 단풍 든 잎들이 무성하다. 한데, 보도에 낙엽이 많은 건 일부러 치우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주위에 낙엽처리용 큰 포대도 안 보인다.
2년 전 여름에 같은 목적으로 이 도시에 왔을 때는, 무궁화꽃 활짝 핀 이면도로 가로수가 애국지사를 만난 듯 반가웠었다. 나라꽃을 보려면, 무궁화가 있는 학교나 식물원에 가야 하는 슬픔을 걷어내기에 충분했었다. 교육 장소가 다른 구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 온 곳인데, 치우지 않은 낙엽이 내 마음을 따뜻하고도 슬프게 한다.
따뜻함은, 초저녁 낙엽 있는 놀이터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소리와 이따금 한두 명 낙엽 속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듣고, 보기만 해도 아지랑이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슬픔은, 시몬에게 ‘낙엽 밟는 소리가 좋으냐’고 묻는 시인 구르몽의 심사가 만추의 석양에 고목의 낙엽이 흩날리는 장면처럼 스미는 마음이다.
이곳 보도 관리인들은 따사한 분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에 낙엽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 따뜻할 테니까 말이다. 여러 가을을, 보도를 걸어 사무실에 오갔다. 그때마다, ‘보도 만이라도 낙엽을 다 지고 스러질 때까지 놔두면 얼마나 좋을까’란 바람을 가졌고, 글로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행복감이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그래. 이런 게 우리 민족의 정서야!’하는 생각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묘한 어울림으로 가슴에 몰려왔다. 삶과 죽음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가깝다는 사실을 아직도 신나게 노는 저 아이들은 알지 못하리라는 마음이 들자, 낙엽을 밟으며 걷는 어른들의 모습으로 눈길이 갔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이 지금, 여기에 실존하고 있었다.
지구촌은, 전쟁과 자국의 이해타산 챙기기로 황망하다. 소모전이 길어지며 전쟁 당사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도 고물가와 미래의 불확실성 증가로 어지럽다. 왜 권력자들은 인생도 자연처럼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까. 삼라만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권력자가 생명 존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젊은 군인들과 힘없는 백성들을 자기 대신 전장에서 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군 침략국 파병과 전쟁터에서 귀한 생명들의 희생 소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핵을 쓰겠다며, 세계 3차 대전을 들먹이는 침략국 권력자는 영생이라도 하는 걸까. 그가 보도의 낙엽과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같은 인간이라면, 당장 전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처음 만난 낯선 저녁의 낙엽 보도를 걸으며, 하느님이라도 개입하여 지구촌에서 전쟁을 없애 주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