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가슴속에서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어린 시절 모내기하던 날의 쓰라린 기억이, 봄바람에 파르르 떠는 참나무잎 노랫가락에 찔려 확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솟아 나는 뜨거운 눈물은 노을빛 타고, 운동용 경사판(傾斜板) 거꾸리에 매달린 내 관자놀이와 이마로 흘러내려 시나브로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든다. 쓰라린 기억은 그 옛날, 참혹했던 우리 집 마당 담 너머로 나를 이끌었다.
혼자 숨어서 펑펑 운다. 담 넘어 외진 곳이다. 막내에게 죄스러워 마당에 나설 수가 없어서다. 나를 그렇게도 따르던 귀여운 놈, 똘똘하여 집안의 어린 왕자 대접을 받던 막내가 꼭 나 때문에 저리된 것 같다. 이윽고, 마당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단장(斷腸)의 소리다. 통곡의 기도다.
“야 대신 날 딜고 가이소! 지발, 날 딜고 가이소!”
목메 이 말만 되풀이하신다. 너무나 억장이 무너지는 사태에, 처음엔 혼절하신 어머니다. 집안의 웃음이던 세 살배기 막내가, 졸지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처절한 울음이 사람들의 달램으로 아슴푸레 그칠 때까지 나도 슬피 울었다.
그날도 함께 사는 숙모는 들에 모내기 가시고, 어머니는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셨다. 숙모님의 아기 젖 먹이는 시간이 되자, 어머니는 나에게 아기를 업혀 들에 보내셨다. 나를 졸졸 따르던 막내가, 오늘은 바빠 못 데려간다는 말에도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다. 막무가내다. 평소에는 그 애를 잘도 데리고 다니던 내가, 그날은 웬일인지 때릴 듯 윽박지르며 기어이 떼어놓고 갔었다.
지금은 잊었지만, 아마도 숙제 등 빨리 돌아와야 할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집에 남은 막내는 어머니 곁을 떠나, 동네 아이들 따라 물이 불어난 냇가에 놀러 갔다가 그만 그 끔찍한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졸지에 ‘막내의 죽음’이란 억장 무너지는 사태 앞에, 내 머리와 가슴은 온통 텅 빈 하얀 공간이 되어 버렸다.
막내의 못다 핀 장미꽃봉오리가 사립문을 나선다. 어머니는 또 혼절하셨다. 만일 낮에 내가 들에 그 애를 데리고 갔더라면, 함께 손잡고 아장아장 걸었을 우리 밭 옆 큰길을 간다. 내 눈엔 눈물이 더 펑펑 쏟아진다. 큰길을 지나 비극의 현장, 냇가로 가는 길에 접어든다. 내 울음이 저절로 커진다. 장미꽃봉오리는 자기가 떠내려갔던 냇물을 가로질러 아스라이 건너간다. 내 울음소리가 그 애 귀에 들릴까. 앞산 자드락에 들어서자, 나도 더는 바라볼 수 없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서녘 하늘도 붉게 울었다.
‘어머니는 어머니 탓, 나는 내 탓’ 이렇게 서로 자기 탓만 같았던 막내의 슬픈 죽음은, 어머니와 내 가슴에 영원한 피멍으로 엉켜 굳어버리고 말았다. 내 피멍에는 두 회한이 도두새겨졌다.
‘그날 내가 막내의 바람을 들어주었더라면, 끔찍한 화는 면했을 텐데….’
‘그때 내가 떼쓰는 막내를 헤아려 데려갔었다면, 그 애는 살았을 텐데….’
붉은 해가 서쪽 소나무 가지 아래에 걸렸다. 거꾸로 보니 해는 떠오르는 것 같다. 만일 슈퍼맨처럼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막내를 기어코 데리고 들에 가고야 말리라는 마음이 하늘로 오른다. 지인들은 말했다. 우리 집 어린 왕자의 슬픈 역사는 어머니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고 그 애의 운명이라고….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 귀여운 왕자가, 왜 그리도 슬픈 운명을 타고나야 한단 말인가.
얼마나 지났을까. 젖은 내 눈에 소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때, 서녘 하늘을 한꺼번에 붉게 물들이는 저녁놀처럼 이런 생각이 화들짝 찾아들었다.
‘내가 거꾸로 보면, 온갖 것들도 거꾸로 보이는 곳이 바로 세상이로구나! 입장을 거꾸로도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인 거야.’
그랬다. 이처럼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나는 여태 살았다. 어렸을 때는 어려서 그랬다 치더라도, 나이 들어가면서도 머리로만 알뿐 실천하지 못했다. 괴롭고 어려울 때나 선택의 갈림길이 닥쳤을 때 혹은, 다른 이들과 의논하고 결정할 때 거꾸로 볼 줄 알았더라면, 세상 살아내기가 훨씬 더 좋았을 터다. 상대방의 입장도 함께 생각하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막내와의 영별(永別)을 아파하기만 했지, 그 아이가 떠나며 남긴 뜻을 왜 헤아려 보려 하지 않았던가. 상대방의 처지에서 볼 줄 아는 역지사지의 삶을 왜 제대로 살지 못했는가. 거꾸로 보지 못해 이제껏 내가 놓치고 산 것은 얼마나 많았을까. 거꾸로 생각하지 않아 가족 친지들이나 이웃들, 생태계에 나는 얼마나 많은 부담과 해를 끼쳤는가. 내가 거꾸로 느끼지 못해 왜곡해 알아듣고 해석하며, 말하고 행했던 일들은 또 얼마나 잦았을까.
왜 진즉 역지사지를 삶의 거울로 삼지 못했는가. 이제부터라도 역지사지를 세상살이의 나침반으로 삼자. 눈물 속에 일찍 하늘나라에 간 세 살배기 막내, 우리 집 어린 왕자의 소원도 바로 이것이었을 테니까.
아침노을 고운 동녘 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반짝인다. 어린 왕자의 별이리라. 별엔 앞에 간 똘똘한 우리 막내가 어린 왕자님이 되어, 뒤에 가신 어머니의 손을 맞잡고 푸른 별 지구를 향해 생긋이 웃고 있는 것만 같다.
하얀 장미꽃 한 송이 함께 들고…….
- 2024. 3. 10. <에세이21>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