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수필 누리

돌탑 투시경

보니별 2023. 3. 19. 21:24

  숲속 세 갈래 오솔길 옆, 작은 돌탑에 점점 관심을 두게 되었다. 한 봄날 돌탑을 자세히 살폈다. 푸석푸석한 돌탑이다. 이 산에 있는 이암(泥巖) 돌멩이들로 쌓아서 그런가 보다. 중앙에 제일 높은 첨탑이 있고, 그 주위에 서너 개의 낮은 보조 첨탑이 있다. 누가 설계하여 세운 것도 아닌데, 다보탑이나 석가탑보다 더 간절하고 정겹다. 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의 신실한 마음들이, 돌탑으로 탈바꿈하여 가슴에 쌓여오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돌탑은 조금씩 커졌다.

 

  어느 날부터 나도, 돌탑을 쌓는 석수(石手)로 변했다. 어울리는 돌을 찾아 더 보기 좋게 쌓는다. 어떤 날은 여러 개의 돌을 쌓고, 어느 날은 뾰족한 돌을 열심히 찾아 조심조심 맨 위에 올려 더 뾰족한 첨탑을 만든다. 돌탑 쌓는 동안 돌 하나에 믿음이, 돌 하나에 꿈이, 돌 하나에 사랑이 서렸다. 돌탑 쌓기는 그대로 간절한 기도로 변했다. 다른 사람들은 돌들에 어떤 염원들을 새겨 올렸을까.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복은 물론, 나라와 지구촌의 평안도 빌었을 테지. 첨탑 하나에 진실도, 첨탑 하나에 착함도, 첨탑 하나에 아름다움도 깃들어 보였다. 사람들 마음이 스민, 찬미와 감사와 기원의 화음(和音)들이 첨탑을 통해 하늘에 오른다.

 

  한 여름날, 돌탑 앞에서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사람들과 내 정성이 깃들어 있던 돌탑이 깡그리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돌탑 쌓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무참히 짓밟혔다. 자세히 본다. 누군가 손으로 던지고 발로 짓뭉갠 것 같다. 첨탑의 기초와 기둥들로 쓰였던 큰 돌들은 저만치 나무 밑동 옆에 나뒹군다. 작은 돌들은 짓누르는 힘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한 주일 후 다시 간 돌탑 앞. 지난주처럼 탑은 사라지고 큰 돌들은 더 멀리 던져졌다. 저절로 신나게 노는 장난꾸러기 개구쟁이들의 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탑을 부수며 지르는 아이들의 소리와, 키득대는 웃음도 들리는 듯했다. 빙긋 웃으며 말없이 다시 탑을 쌓는다.

 

  몇 주 더 지났다. 돌탑은 역시 여지없이 무너졌다. 생각해보니 방학 기간도 이젠 지났다. 개구쟁이들이 탑을 부순 것이 아니었다는 불안한 마음이 왈칵 들었다. 그러자 부순 이의 감정이 큰 구렁이가 되어, 나뒹구는 돌들을 칭칭 감아 조이며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버릴 때 떨어지며 선 뾰족한 돌 사이로, 상반신을 곧추세운 푸독사가 머리를 내밀고 독을 뿜어내며 싸움을 거는 듯도 하였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뒤따라 마음속에서 분노와 오기가 차올랐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오기다. 분기를 누르며 다시 탑을 쌓는다. 서서히 마음 한구석에서 염려의 싹이 돋았다. 언론에 보도되었던 학교의 단군상, 사찰, 성당 등의 표상물(表象物)들이 훼손 또는 오염된 사건들이 떠올라서다. 과학 문명 시대를 무색하게 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는 기분이다.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제발 어느 누가, 종교적인 이유로 이 탑을 짓뭉개지 말게 해주소서. 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고.

 

  다 쌓은 돌탑을 쳐다본다. 탑 위로 생각의 새가 날아오른다. 사람들은 이 탑 앞에서 세 부류로 나뉘는구나. 처음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강 건너 불 보듯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한 부류다. 관심을 가지고 돌을 주워 와 탑을 쌓고 돌보는 사람들이 다른 한 부류다. 그리고 탑을 무너뜨리거나, 뭉개버리는 사람들이 마지막 부류가 되고. 텅 빈 하늘을 날아다니던 생각의 새가, 내가 쌓은 첨탑 돌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로댕의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보는 듯 사위가 조용하다.

 

  의문이 소용돌이친다. 세상은 왜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된 걸까. 어떤 일 앞에서 사람들은방관자, 참여자, 반대자로 갈라져서 외면하거나, 동참하거나, 반대하며 살아간다. 한쪽에서 탑을 쌓으면 다른 한쪽에서 탑을 부수는데, 다수의 사람은 침묵한다. 소수의 참여자 반대자로 인해 갈등하고, 싸우고, 부수다가 급기야는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갈등과 싸움으로 공멸의 길을 갈 수도 있는 게 우리 인간이 이루어 사는 세상이라니. 고통과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희한한 인간의 숙명이다.

 

  침묵하는 다수의 사람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살기 바빠서 지구촌이나 나라와 사회의 문제에 신경 쓸 시간도, 관심도 없다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손해가 올까 봐 숨죽이고 사는가. 인간도 미생물처럼, 더 번성하는 쪽에 가담하여 적응하며 사는 기회주의 유전자라도 가진 걸까. 일부 사람이 돌탑을 쌓고, 다른 일부 사람이 그 돌탑을 무너뜨리는데, 침묵하는 다수는 무심할 뿐이다. 그 때문에 사실과 진실이 왜곡될 수 있고, 조작될 수도 있지 않은가. 탑이 없어지고 나면, 무심하게 지나칠 도 사라진다는 것을 침묵하는 다수의 사람도 알고 있을까.

 

  웬일인지 요즈음은 돌탑이 무너지지 않는다. 돌탑 앞에 설 때마다 그 덕에 세상을 꿰뚫어 본다. 그때그때의 이슈나 사건, 사회를 제대로 보기 위해 굳이 이원론 삼원론 같은 이론이나, 종교 교리, 법리 등을 소환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돌탑 투시경으로, 사람들이 세 부류로 나뉘는 모습을 응시하면 된다. 어떤 이는 방관자로, 어떤 이는 동지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반대자의 모습으로 선명히 나타나므로…….

 

  세 갈래 오솔길에 올 때마다 나는, 기꺼이 돌탑 투시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또 쌓을 것이다.

 

 

 

    - 2003. 03. <에세이 21> 2003. 봄호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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