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광복이의 3+1 뽀뽀

보니별 2020. 7. 30. 11:44

   

 

                                                   광복이의 3+1 뽀뽀

 

 

   등록일 2020.07.29                                                                  게재일 2020.07.30


 

광복이의 첫 거울 뽀뽀가 삼삼하다. 동영상 안 거울에 비친 녀석의 얼굴 모습이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콕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온갖 느낌이 한순간에 파도로 몰려오니 말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이, 마음 밭에서 죽순처럼 돋아난다.


동영상을 켜기 전 정지 화면은 이렇다. 녀석은 왼발을 쪼그리고 오른발은 주저앉은, 반 쪼그려 앉은 자세를 거울 앞에 취하고 있다. 얼굴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향하고 있다. 그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천진하면서도 진지하다는 말밖에 더할 수 없다. 왼손은 손가락을 펴서 거울에 대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를 반쯤, 검지는 다 폈다. 나머지 세 손가락은 오므리고 검지가 거울에 비친 얼굴을 가리키고 있다.

동영상을 켰다. 녀석은 얼굴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로 가져가 조심스러운 첫 뽀뽀를 한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입맞춤이다. 첫 뽀뽀의 느낌이 어땠을까. 비주얼로는 자기 입술이었으나, 막상 입술에 닿은 것은 딱딱하고 찬 유리면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녀석. 그래선지 두 번째 뽀뽀는 다소 세게 거울에 다가간다. 이번에는 입술뿐만 아니라 코까지 거울 유리에 콕 부딪친다. 조금 놀랐는지, 일순 멈칫한다. 울지 않으니 안 아프나 보다. 의아한 듯 녀석이 두 눈을 한 번 껌뻑인다.

곧이어 세 번째 뽀뽀를 ‘응.’ 소리와 함께한다. 마음 깊이 즐거운가 보다. 그리곤 오른손가락으로 무슨 표식을 하는 듯하며 거울 앞에 주저앉아, 거울의 자기를 향해 몸을 움직이며 옹알이를 한다. 다시 허리를 숙이며 오른손 검지를 펴 거울에 댄다. 중얼거리듯 낮은 소리를 내면서 두 이마를 마주 댄다. 이어 노래 부르듯 뭔가 속삭인다. 다시 주저앉아 허리를 들썩이며 노래 같은 옹알이를 한다. 거룩해 보인다. 녀석은 거울 속의 자기를 친구로 알까. 아니면 자신을 알아보는 걸까.

 

녀석은 잠시 거울 속의 자기를 응시하며 무언가 중얼거리다가, 첫 뽀뽀 때와 같은 자세로 다시 예의 진중(珍重)한 뽀뽀를 한다. 뒤풀이 인가보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무슨 소리를 내며 엄마 앞으로 돌아선다. 동영상은 여기서 끝이다. 녀석은 이 거울 놀이에서, 어떤 비밀을 보여준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삼세번 뽀뽀하고, 잠시 즐거워하다가 다시 한 번 뽀뽀를 한 뒤 자리를 뜨는 행동 양식 곧, 3+1 방식의 자기 뽀뽀. 꼭, 무슨 메시지를 담아서 내게 보내는 것만 같다.

녀석은 무슨 마음으로 거울에다 뽀뽀했을까. 그것도 3+1 뽀뽀를…. 제 엄마가 발달 단계상 거울 놀이의 시기이기에, 녀석 앞에 커다란 거울을 놓아주었단다. 한데, 거울 앞에 앉은 녀석의 얼굴 표정이나 몸, 손발의 행동, 동작이 어른인 내 눈에는 전혀 노는 것 같지 않다. 장난기도 안 보인다. 어느 신실(信實)한 구도자(求道者)가 거울을 대할 때의 모습이 저럴까. 내 상상과 언어 능력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표현하거나 묘사할 수 없는 장면을 녀석은 연출하였다.

태명이 광복이인 이 녀석은 둘째 손자다. 첫돌이 아직 한 달 반 정도 남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단계로 보더라도 유아기다. 그러니 녀석의 표정이나 동작, 행동, 소리 등은 거의 본능 곧, 천부적인 것들을 나타내는 시기이리라.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을 오롯이 만나는 일은, 원래 저렇듯 진지하고, 즐거운 일이란 말인가. 다 큰사람이 거울 앞에서 하는 양태(樣態)는 천태만상일 터. 어떤 성인이 거울을 두고 광복이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면, 그는 아마 나르시시즘에 빠졌으리라.

두 살 위인 녀석의 사촌 형 태극이도, 영아 시절 삼세번 반응을 통해 내게 겨레의 삼세번 문화 메시지를 주었었다. 천지인 삼태극사상이 녹아든 삶, 하늘을 섬기고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온 우리네의 모습 말이다. 뒤이은 광복이 녀석의 삼세번 더하기 한 번의 메시지는, 한 번 더 확인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계약서를 쓰고, 서명날인으로 확인하듯이…. 그리고 ‘우리 겨레의 삼세번 문화의 근원은, 영유아들의 본능적 교감 반응과 옹알이 같은 놀이에서 왔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뒤따른다.

마음 하늘에, 북극성이 유난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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