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발표 글-경북매일

살아내기

보니별 2020. 8. 20. 21:49

                                                    살아내기          

                         

 

                   등록일 2020.08.19 20:03                                                     게재일 2020.08.20


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


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을 초지로 만든 곳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푸른 녹지가 잘 어우러져 저절로 관심을 끌었다. 지금 팔월 초순인데, 내 기억엔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체 풀베기를 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는지 학교 관리가 아니라면 해당 행정기관의 배려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늦봄, 오월 하순께도 풀을 베어냈었다. ‘아직 가을은커녕 채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웬 벌초인가. 이상하다.’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또 베어냈다.

풀베기를 시킨 이들은, 녹지를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한해살이인 잔디, 쑥, 클로버, 민들레, 개보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외래종들로 어우러진 풀밭이다. 내 생각엔 베지 않고 그냥 한해를 다 살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어릴 때 산골에서 자라나며 겪은 삶은 그야말로 있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다.

 

풀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순간 땅 위 몸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고통과 상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풀들은 몸을 여미고 재기(再起)를 시작한다. 잘린 경계면 아래 잔디 잎은 끝이 조금 마르며 그대로 자라나고, 곁엔 봄 새싹 같은 순이 다시 돋아난다. 지난 늦봄 벌초를 당했을 때도 풀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곧바로 녹지에 정갈한 연록 새봄을 연출하였었다. 오가는 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쉬는 사람들, 나아가 날아드는 참새, 까치, 비둘기, 애완견까지 즐겁게 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새 고사리손마다 동녘햇빛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앙증스레 쥔 풀들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생명의 본모습을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다.

한여름에 몸 잘린 풀들은 또 하나의 새봄을 이 녹지에 공연하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새싹이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낼지 모르지만, 몸을 여미는 모습을 보노라면 틀림없이 한여름의 새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되면 나는 한 해에 세 번의 봄 새 생명을 만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터다. 비록 날씨 탓에 이슬 머금은 모습은 못 만날 지라도 한여름에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한데, 왜 풀들의 고통 앞에서 내 마음이 달떴던 것일까. 호모사피엔스 이래, 조상 대대로 연연히 풀을 먹으며 살아온 사인인 까닭일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예초기의 무서운 날에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그 황망함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애쓰지 않지 않았는가. 내가 풀이라면, 두 번씩이나 몸이 잘려 나간 처절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고해의 세상에 무에 미련이 있어, 또다시 살아가려 한단 말인가.

마음의 눈에 풀들이 다시 살기 위해 새마을사업이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물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몸의 탄소동화작용 공장을 가동한다. 설비에서 연록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잎은 모양을 갖추며 고사리손이 된다. 손은 땅을 솟아오르며 새봄을 부른다. 공장 가동 소리가 아카샤 기록(Akashic records) 동영상으로 이렇게 저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낸답니다.”라고…. 그랬구나! 풀들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살아내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몸이 몇 번을 잘리거나 훼손당해도 또 일어서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바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던 거야.

올여름 녹지에 태어날 새봄 고사리손엔, 아마도 하늘 빗물이 송골송골하겠지….

'어울리기 > 발표 글-경북매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혼 페스티벌  (0) 2020.10.07
디어 위너  (0) 2020.09.11
광복이의 3+1 뽀뽀  (0) 2020.07.30
시대 징표 바라보기  (0) 2020.07.09
지식  (0) 2020.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