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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길수 수필가 |
세레나.
한가위를 며칠 전에 지냈습니다. 계절은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이겠지요. 올 초가을 날씨는 습도가 높아 제겐 여름을 방불케 하도록 더웠습니다. 하지만, 한가위를 지나고 나니 소슬바람 부는 가을 저녁나절을 만납니다. 웬일인지 이런 날이면, 소년시절 겪던 ‘저녁놀 비칠 무렵’들이 생각납니다.
꿈 많던 소년의 동공에 비친 저녁노을…. 들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돌아오거나 또는, 소를 먹이고 들어오거나 혹은, 꼴을 뜯어 망태에 메고 집에 올 때 말입니다. 붉은 해는 서녘 산등을 타고 시나브로 내려앉습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녁놀의 황금색 시네마는, 소년의 마음을 홀려내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소년은 저녁놀에 취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콧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었지요. 배운 적 없는 매혹의 멜로디들이 저절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그땐, 그 가락들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옛 흥얼거림이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영가(靈歌)’였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소년 시절 영가를 알았더라면, 음악의 길을 걸어갔을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세레나.
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많이 흘러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을 소중하게간직하고 살고 있을 테지요. 제겐 ‘저녁놀 비칠 무렵’이 그런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고향 집이 남서 방향으로 서 있어서 저녁놀이 비치는 날은 언제나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땐 집 출입로도 서쪽으로 나 있어서, 저녁 해와 저녁놀은 마치 친구와도 같이 익숙하게 살았으니까요.
아홉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 산골마을은, 대문이나 사립문이 있는 집이 없었습니다. 출입로가 있을 뿐이었지요. 누구네 집이라도 그냥 드나들 수 있어, 동네가 마치 한집 형제간 같이 살았다 싶습니다. 우리 집 뒤쪽에는 야산 자드락에 묘소 몇 기가 있는 잔디밭이 서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동네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지요. 잔디밭이 언덕을 이루고 있어 동네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남녀 할 것 없이 잔디밭에 몰려들어 놀았습니다. 열 발 뛰기, 숨바꼭질, 상석(床石)에 앉아 노래 부르기 등의 놀이였습니다. 명절이나 겨울철 주말 등엔, 남자아이들이 모여 자치기를 하며 노는 장소이기도 했지요. 그때 우리들은 놀이터를 ‘양소’나 ‘미뿔’로 불렀는데, 왜 그런 사투리를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끔 양소에 놀면서 저녁놀을 바라볼 때도 있었지요. 마을 지붕들을 병풍으로 둘러 선 앞산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위로 저녁놀이 황금빛왕관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지울 수 없는 동영상으로 제 마음망막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세레나.
원래 하늘색은 붉다지요. 아침저녁으로 보이는 붉은 하늘이 제 색깔이고, 낮의 푸른색은 하늘의 먼지에 햇빛이 분산되어 그렇다는 과학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소년 제가 저녁놀에 취한 것은, 원래의 하늘모습에 감응한 것일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하며 살다가 하늘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인생일진데, 어린 저는 본능으로 저녁놀에서 그런 것을 느꼈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요즈음도 저녁놀 고운 황혼녘이나,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 혹은 교교한 달밤이면, 주어진 제목도 곡조도 없는 즉흥멜로디를 흥얼거립니다. 멜로디 파동에 그 옛날 눈부시던 내 소년이,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있음을 바라봅니다. 소년은 행복이자 은총이며, 그리움이자 가슴 시린 슬픔임을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