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잠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아내에게 대답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하다.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고,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짓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오늘부터 한 주에 두세 번 아침에 혼밥을 해야 된다는 것이 싫은 마음도 인다. 아내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경쾌하다.
지난달, 웬일인지 아내가 처음으로 시니어클럽에 아침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아 선발될지 모르겠다고 걱정도 했다. 다행히, 걸어서 반시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의 등교시간 횡단보도 안전도우미로 선발되었다. 오랜만에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스스로 번다는 사실에, 그녀는 속으로 신이 난 모습이다. 좋은 기운이 향기처럼 퍼져 오는 것만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았다.
올봄 작은며느리가 오랜 기간 애쓰고, 기도하고, 기다린 끝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았다. 온 가족에게 내려온 하늘의 은총이기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다. 이로써 우리 부부는, 곧 두 돌을 앞둔 큰며느리가 낳은 개구쟁이 손자까지 두 손주를 두게 되었다. 그러니 아내는 요즈음 더 기뻐 보인다. 자기가 번 돈으로, 손자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가 보다. 아내는 아침형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단다. 반면 나는 학교나 군대, 직장의 사정에 따라 아침형, 저녁형 사람으로 변모하며 살아왔다. 요즈음은 출근이 늦어 저녁형 사람으로 산다. 인터넷 서핑이나 글 관련 자료들을 찾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다. 늦는 날은 심야 두세 시경에 잘 때도 있다. 그러니 아내처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돌아보면, 내 혼밥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농번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떤 날은 어른들이 다 들에 가고 없다. 할 수 없이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혼자 먹었다. 바로 혼밥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타향살이는 자주 혼밥을 하게 했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는 자취를 했으니, 친구와 함께 한 기간을 빼면 모두가 혼밥을 한 기간이 된다. 이때는 혼밥뿐 아니라 혼국수, 혼수제비도 한 적이 있다.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다. 인간의 혼밥 역사는 원시시대부터라 싶다. 공동체 생활 속에도,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후 모든 세대에 혼밥은 있었을 테니,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데, 왜 근년에 와서 우리 사회는 혼밥, 혼밥족, 혼밥러(er), 프로혼밥러(professional혼밥er) 등 그 파생어들이 유행, 이슈화되며 새 문화 트렌드라고 법석을 떨까. 물론, 혼자 사는 세대가 늘어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언론 특히, 티브이 ‘먹방’의 영향이 커 보인다.
약삭빠른 상혼(商魂)은 일본을 벤치마킹하여, 혼밥족을 모으고 나아가 더 양산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임은 오랜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란 뜻이다. 따라서 혼밥 문화가 남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자칫 국가사회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등 우리 사회 지도층은 이런 관점에서 혼밥 문화를 주시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내일 아침도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이, 내 혼밥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