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밟고 걷기
등록일 2022.11.14 게재일 2022-11-15
웬일인지 요즘은 저쪽 길로 발길이 향한다. 보도를 마다하고 간다. 개방된 녹지에 저절로 난 오솔길이다. 늦가을이다.
오솔길은 잔디밭과 나무들로 이루어진 학교 녹지에 있다. 없던 길이 언제부턴가 생겨났다. 느티나무잎, 플라타너스잎, 은행나무잎, 이름 모르는 나뭇잎도 떨어져 있다. 그 곁 스테인리스 파이프 담장엔 장미 덩굴이 아직 푸르다. 세월이 아쉬운가 보다. 낙엽 깔린 땅을 밟는 느낌은 맨땅의 그것과는 다르다. ‘구르몽의 숲’으로 가지 않아도, 긴 시간 없어도, 일부러 안 와도 출퇴근길에 늦가을 정취를 만끽한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거리는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시멘트 마당으로 이루어져 땅을 밟지 못한다. 도시인은 다 그럴 것이다. 요즈음엔 시골에 살아도 웬만한 길은 다 포장되어 있으니, 마음먹으면 땅을 밟지 않고 걸을 수 있으리라. 하긴 포장길이나 블록 보도도 다 자연 재료로 만든 것이니, 땅과 같다고 우긴다면 결정적 반박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땅에 난 길과 포장된 길은 다르다는 점을 누구나 본능으로 알리라.
산골 농가에서 땅과 함께 유년을 보냈다. 그 경험은, 사람이 땅을 떠나서는 제대로 살 수 없음을 체득하기에 충분했다. 땅따먹기, 구슬치기, 자치기, 굴렁쇠 굴리기, 학교에서의 놀이나 경기, 등하교 때 걷기 등 모든 일상생활이 땅 위에서 이루어졌다. 더욱이 들일 돕기, 소먹이기, 꼴 뜯기 같은 일은 땅과 더불어 숨 쉬는 시간이었다.
봄날, 어른들이 들에 가고 나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조그만 납작한 돌이나 사금파리 하나 주워들면 망 준비 끝이다. 마당 안 맞은편 구석을 각각 시작점으로 하고 손뼘 한 바퀴 돌려 기본 땅을 마련한다. 선, 후공을 정한 다음 검지나 중지로 망을 튕기며 간 길을 따라 줄을 긋는다. 세 번 만에 자기 땅에 안착하면 줄 안이 다 제 땅이 된다. 마칠 때 더 큰 땅을 차지한 사람이 이긴다.
‘땅과 사람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라고 묻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리라. 땅과 사람 아니, 지구촌 모든 생명과 땅은 불가분의 관계이지 않은가. 그래도 또 낙엽의 계절 늦가을이 되니, 저절로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 봄엔 뭇 생명이 땅에서 용솟음치고, 여름엔 자라나, 가을엔 열매 맺고 낙엽 져, 마침내 땅으로 되돌아간다. 땅은 생명을 내어주고, 키우고, 명 다하면 다시 받아들이는 어머니다.
어린 시절 땅따먹기 놀이를 하며 양손으로 느끼던 땅과 흙이 주는 촉감과 교감이, 지금도 양손에 살아있다. ‘신토불이!’ 그랬다. 땅은 내 생명, 나아가 온갖 생명과 하나였다. 우리의 전통 삼재(三才) 사상도, 땅이 만물을 창조하고 운행하는 하늘 일에 인간을 동참시키는 주체로 본다고 이해하고 싶다. 현대는 인간이 땅을 잃는 시대이지 않을까. 지구촌의 갈등, 전쟁, 불행도 외면하는 땅 때문이란 마음이 여울진다.
출퇴근길, 학교 녹지 오솔길을 100여 걸음 땅을 밟으며 걷는다. 그때, ‘시몬의 낙엽 밟는 소리’도 덤으로 들을 수 있으니….
복도 많다.